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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세상 속으로
2010년 04월 15일 (목) 02:11:23 대학부 kdunp@hanmail.net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삶은 또한 만남의 연속이기도 하다. 이 만남들을 따라 ‘나’라는 존재의 의미는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물론 우리들 각자 고유의 속성들이야 있겠지만 그것이 무엇과 어떻게 결합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발현되는 것이다. 삶이란 길 위에서 우리가 만들어가는 수많은 관계와 만남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은 자신과의 만남이다. 그러나 말이 쉽지, 우리를 어디 가서 만나겠는가?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면할 수도 없어서 늘 묵직하거나 혹은 기만적인 것이 자신과의 관계가 아닌가. 삶이 배당해준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다가 그 가면 뒤에는 정작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어느날 문득 깨달아야 한다면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프랑스의 시인 장 콕토는 “사람들이 너에게 나무라는 것, 그것을 가꿔라, 그게 바로 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내 멋, 내 마음, 남다른 개성에 따라서 사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진정한 나의 모습은 타인들의 시선에 가 부딪힐 때, 타인 혹은 세계와의 관계 속에 던져질 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꿩이 풀숲 속으로 제 머리를 숨기듯이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면서 우리가 세계와 관계 맺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꿩 잡는 게 매라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꿩 먹고 알 먹기 위해 달려들어서도 세계와 상호 교신하고 관계 맺는 열린 기호로서의 나 자신을 찾을 수는 없다. 현실에 대해 무관심이나 도피가 아닌, 그렇다고 무조건 항복도 아닌 관계맺기의 방식을 찾아야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선 파헤치고 캐묻는 질문의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젊은이들이 그리고 사회의 구성원들이 골치 아프고 무겁다는 이유로 중요한 질문들을 폐기처분할 때, 전 사회에 스며든 미래에 대한 공포, 무한경쟁이라는 주문을 떨쳐내기는 힘들다. 야심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 야심이 삶을 집어삼킬 때 나쁜 것이 되는 것처럼 경쟁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살기위한 경쟁이 삶을 황폐화시킬 때 적어도 우리는 돌아보고 질문할 권리는 가져야하지 않을까.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왜’라는 질문이 살아있는 공간,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해 치열하게 타인과 세상 속으로 몸을 던지는 젊음의 꿈이 살아있는 공간, 그것이 대학일 것이다.

 

고 재 정(미디어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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