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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이 중요하다
2009년 11월 02일 (월) 20:37:07 김옥엽 (영어영문학과) kdunp@hanmail.net
 

 요즘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오빠 밴드'를 즐겨본다. 이 프로그램의 묘미는 전문 밴드가 아닌 '연예인들'이 모여, 매주 다른 연주 주제를 설정하고 좌충우돌하며 그것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있다. 웃다 보면 어느 덧 그들의 좌충우돌 연주 과정에 '빠져들게' 된다. '오래 볼수록 빠져든다'는 그들의 전략도 이런 면에서 주효한 것 같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 "젊은이는 늙기 전에", "늙은이는 죽기 전에"를 구호 삼아 외치는 그들의 긴장한 모습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도 아마 준비과정을 지켜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중간고사도 끝나 학기가 절반 이상이 지난 시점에서 뜬금없이 '오빠 밴드' 타령이냐고? 이 프로그램을 볼 때 마다, 무슨 일이건 결과 못지않게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연유다. 시험기간이 되면 학생들은 좋은 학점에 대한 부담 속에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기도 하지만, 더러는 각종 기발한 컨닝 유혹에 넘어가기도 한다. 그 중 '적발된' 깨알 같은 글씨(돋보기보다 현미경이 필요할!)로 축소한 컨닝 페이퍼를 보면 실소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걸 만들 시간에 공부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들고, 감독하는 교수의 눈을 피해 그 안에서 답을 찾으려는 안간힘이 안쓰럽고도 어이없게 느껴진다. 선의의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컨닝 행위는 응당 없어야 하고 철저히 막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사소한 '부정행위' 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의식은 가능한 한 일찍 근절되어야 할 위험한 발상이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업무를 완성하거나 곤경에 처할 때마다 컨닝 페이퍼를 만들 것인가? 고위 공직자 임명 절차로 열리는 국회 청문회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안이 논문 표절, 재산 축소 또는 허위 신고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고",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가는" 법이다. '아님 말고' 식의 무책임한 도덕적 해이는 사회를 병들게 하고 진정한 진보를 가로를 막는다.

성과 위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과 세상 사이의 올바른 대화와 소통 과정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이 있다. '가난한 이를 위한 희망수업'으로 잘 알려진 클레멘트 코스를 설립한 미국의 교육자 얼 쇼리스(Earl Shorris)가 그 좋은 예다. 이를 본보기로 우리나라에서도 노숙인, 자활 근로자, 교도소 수용자,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의가 개설되었고, 그 교육 사례를 엮은 책이『행복한 인문학』(2008)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의 필자들은 "인문학 교육을 어떤 완성태로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더불어 함께 만들어 가는 일종의 '설치작품'을 만드는 행위로 사유해보자는 데 합의하고 원고를 집필했다"고 밝힌다. 이런 기획의도에 맞게 이 책에는 강의자들의 고백록 형식이나 수강생들에게 띄우는 편지 형식의 글 외에도 부록으로 인문학 코스의 현장에서 진행된 수강생들의 글도 실려 있다. 이들에게 「시로 배우는 역설의 진리」를 강의한 도종환 시인은 "직장에서도 쫓겨나고 아주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쓴 시" 한편을 소개하고 함께 읽는다.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없는 벽이라고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시인은 담쟁이에게서 인생의 벽을 넘어가는 방법을 보았다고 한다. 담쟁이가 "자기 앞을 가로막는 벽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바꾸면서 넘어가는" 것을 보며 '조급해하지 않는 마음, 자신감, 끈기, 포기하지 않는 자세, 연대 같은 것들이야말로 절망 속에서 다시 희망을 만들어가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임을' 노래한 시지만, 올바른 과정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시로 읽어도 좋은 시다.

                                                                                                                  김옥엽 (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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