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8. 12. 3 월 13:56
학위수여식,
   
> 뉴스 > 여론칼럼
     
[Culture칼럼 12] 느린 삶을 통한 '소확행'
2018년 12월 03일 (월) 13:54:35 이서영 프리랜서 작가 ckunp@cku.ac.kr

최근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게 됐다. 딱히 재미있겠다고 생각해서 채널을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 영화의 주연 배우인 김태리의 연기가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후, 나는 그녀가 스크린에서 보여준 느린 삶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 여파로 나는 요즘 난생 처음으로 수제 곶감만들기에 도전하고 있다. 남자 주먹 크기만 한 대봉감을 6개 사서 정성스럽게 깎은 다음 빨간색 곶감꽂이에 꽂아 베란다에 걸어놓았다. 고작 감 6. 그런데 이 작은 녀석들이 내 삶에 소소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곶감을 만들려면 바람이 통하게 해야 한다고 해서 기온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요즘에도 베란다 문을 24시간 열어놓고 있다. 추운 것을 지독히도 싫어해서, 겨울엔 바람 한 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모든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있던 내가 말이다.

또 매일 아침과 저녁 베란다를 드나들면서 감이 얼마나 쪼그라들었는지, 얼마나 말랑해졌는지 확인하고 만져보는 것이 나의 일과가 됐다. 그렇게 2주가 지났다. 남자 주먹 만 하던 감이 내 주먹 크기만 하게 작아졌다. 그렇게 점점 더 말랑해지는 감들을 보면서 기특해하고, 기뻐하고 있다. 언젠가 완전히 말라서 달달하고 쫀득한 곶감이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기다린다는 것이 이렇게 설레고 즐거운 일이었던가?’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나날들이다.

사실 나는 성격이 조급하다. 그래서 기다리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사람이든, 음식이든, 물건이든 기다림은 내게 지루함과 짜증을 동반하는 일일 뿐,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번 수제 곶감만들기 작업을 통해 기다림의 즐거움을 맛보게 됐다.

일본 열도에 퇴사 바람을 일으킨 책 퇴사하겠습니다의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는 책 속에서 직거래 장터의 매력을 이야기 하며 이렇게 말했다. ‘마트에는 어느 계절이든 채소들은 대체로 다 갖춰져 있습니다. 그러나 직거래 장터에서 채소를 사면서는, 채소라는 것은 본디 그것들의 계절이 오지 않으면 수확할 수 없다는 점을 좋든 싫든 알게 됩니다. 직거래 장터에서는 무는 찬바람이 불지 않으면 절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목을 빼고 기다리다가 드디어 제철이 되어 만나는 기쁨. 돌연 직거래 장터 선반 여기저기가 큼직한 무로 꽉 들어차게 됩니다. 왔구나, 왔어! 그렇게 들뜨는 순간 입니다.’ (56~57p)

나는 그녀가 느낀 감정과 나의 그것이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마도 부재에 의한 가치의 회복혹은 기다림을 통한 정서적 충만감이 아닐까.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원하는 것을 수일, 혹은 몇 시간 만에 얻을 수 있다. 이것은 분명 문명의 혜택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로인해 우리는 많은, 작은 기쁨들을 놓치고 있다. 때로는 지루하게 기다리는 느린 삶이 사람의 영혼을 정화시키는 데에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 가톨릭관대신문(http://news.cku.ac.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신문사소개 기사제보 광고문의 제휴안내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210-701 강릉시 범일로 579번길 24(내곡동) | 전화 : 033)649-7880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창희
Copyright 2008 가톨릭관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ckunp@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