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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칼럼 11] 자기 인정
2018년 11월 05일 (월) 13:40:08 이서영 프리랜서 작가 ckunp@cku.ac.kr

이상하게도 요즘엔 그냥 쉬운 게 좋아/ 하긴 그래도 여전히 코린 음악은 좋더라/ Hot Pink보다 진한 보라색을 더 좋아해/ 또 뭐더라 단추 있는 Pajamas Lipstick/ 좀 짓궂은 장난들/ I like it/ I'm twenty five/ 날 좋아하는 거 알아(생략)

-아이유 팔레트

아이유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솔로 여가수 중 한 명이다. 혹자는 그에게 아티스트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유는 작사, 작곡은 물론이고 노래와 춤까지 섭렵한, 우리나라에 몇 없는 가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아이유 이야기를 꺼내느냐고? 위에 소개한 팔레트라는 곡 때문이다.

이 노래를 처음 접한 건 불과 6개월 전 쯤이다. 지인과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우연히 듣게 됐다. 그 때 차 안에는 정적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가사 한 줄 한 줄이 귓가에 또렷하게 박히듯이 들렸다. 그녀는 노래에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음속에 작은 파동이 일었다. 그녀가 부러웠고, 놀라웠다. 성숙하기에는 조금 이른 나이임에도 자기 자신의 기호에 대해 똑부러지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랬다.

나 자신에 대해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그것은 수십번의 시행착오와, 수백번의 우울감을 동반한 자기 고찰을 거친 후에야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수십 번, 수백 번 던지며 생각의 종이를 수천 번 찢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였다.

사실 내가 자아 성찰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이상형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이상적인 내 모습을 정해놓고 그 틀에 맞추는 데에만 온갖 힘을 쏟아 부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었다. 나는 털털하고 외향적인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래서 타인 앞에서 늘 연기를 했다. 쿨한 척, 즐거운 척, 밝은 척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학창시절 친구들로부터 너 연기하는 것 같아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실제의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향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무리에 섞여있는 것 보다 혼자서 조용히 책 읽는 것을 편안해 하고, 상처받은 일에 대해 금방 잊기보다 두고 두고 담아두는 스타일이었다. 이것을 인정하기 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나는 소위 마이너가 되기 싫었다. 요즘 말로 아싸라고 하던가. 당시 내 인식관에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은 비정상이고 외향적이고 털털한 성격이 정상혹은 주류라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러나 살다보니 어떤 성격이든 사람이든, 사건이든 빛과 그림자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다. 마치 태풍이 인간에게는 해롭지만 생태계 전체에는 유익을 끼치는 것처럼. 이것을 깨달은 시점부터 거북한 연기 인생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됐다. 그리고 '그래.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렇게 나를 인정하자 전에 없던 평안함이 마음에 찾아왔다. 허공에 떠 있는 이상향에서 내가 손에 쥐고 있는 현실로 시선을 옮겼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부터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둡고 답답한 긴 터널을 그제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삐쭉빼쭉한 내 모순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겠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내 모습도 멋지지만 더 멋진 인생을 위해, 나는 나를 만드는 작업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전까지는 내가 현무암인지, 대리석인지, 화강암인지, 석회석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조각을 했다면 이제부터는 성질을 제대로 알고 작업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희망적이다.

혹여 지금 마음이 지옥인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 자신을 인정하라. 그것이 오히려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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