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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소장유물소개] 평교자(平轎子)
2018년 09월 03일 (월) 02:30:51 가톨릭관대신문사 ckunp@cku.ac.kr

   
 앞뒤 두 사람씩 네 사람이 메는 가마의 일종이다
. 네 사람이 메고 다닌다하여 사인교(四人轎)’라고도 불리는데, 이 명칭은 혼례식에 사용되는 가마를 지칭할 때 주로 쓰인다.

 가마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지에 대한 기록이 확실치는 않다. 그러나 신라시대 유물 중에 바퀴 달린 수레와 비슷한 것이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었고, 고구려의 안3호분에 있는 주인도(主人圖)”에는 호화로운 가마에 앉아 있는 주인과 부인의 모습이 각각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짐작할 수 있다.

 중국인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 따르면 고려시대에도 가마가 사용된 기록이 있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제도화되면서 보다 활발히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가마제도는 크게 왕실용, 양반용, 서민용 및 의례용으로 나눌 수 있. 왕실용 가마로는 왕이 타는 ()’과 공주나 옹주가 타는 (德應, 덕응)’ 이 있었으며, 양반가에서는 품계에 따라 평교자나 남여·초헌 등을 타고 다녔다.

 이 가운데 평교자는 종1품 이상의 현직관료 또는 노령의 퇴임고관들이 이용하는 가장 상급의 것이었다. 조선 개국 직후만 하더라도 부녀자들 역시 평교자를 이용할 수 있었으나, 1404(태종 4)3품 이상의 정실부인들에게 유옥교자(有屋轎子, 사방이 막혀 있고 지붕이 달린 가마)의 사용을 허락하면서 나머지 부녀자들 모두가 평교자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신분제의 문란과 사치풍조의 발생으로 가마의 사용까지 분별이 없어지자 가마를 단속하는 일까지 있었으며, 1894년 갑오개혁 때 평교자와 초헌의 사용이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금번 소개되는 평교자는 조선시대 후기의 것으로 현재 선교장전통가구박물관에 대여·전시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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