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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향기] “너 어디 있느냐?”
2018년 09월 03일 (월) 01:19:04 권정옥(마리 로즈) 수녀 ckunp@cku.ac.kr

우리는 하루에도 수차례 자신이 있는 곳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실시간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주게 된다. 그리고 자원하여 자신이 있는 곳을 카톡이나 사진으로 전송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짐작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너 어디 있느냐?”하고 묻지 않아도 된다. 내가 알고자 하는 사람을 구글에 치면 바로 어디 어디에서 이런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지나친 친절을 베풀지 않는가? 스마트 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람의 생일이 되면 축하카드와 선물을 보내라는 스마트폰의 재촉에 마지못해 ~~~을 불러내어 심부름을 시킨다.

우리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궁금해 하는 사람은 출생 후 줄곧 부모님과 형제자매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서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엄마!”였다. 엄마가 계셔야 할 곳에 계시지 않으면 성질을 버럭 내고 어디 가셨냐고 마치 내가 주인이라도 된 양 의기 양양하게 굴었던 추억들이 가득하다. 그러고 나서는 엄마를 찾기 위하여 온 동네를 샅샅이 뒤진다. 딱히 할 말도 없었건만 엄마의 부재로 정신이 혼미해져 일단 찾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돌아다녔던 흐릿한 사진과 같은 추억이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한편 부모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식들을 챙기려고 시시때때로 ㅇㅇ야하면서 눈도장을 찍은 후에야 편안한 마음으로 일과를 마무리하시는 부모님을 회상하게 된다. 그런 사랑을 먹고 나는 성장하였다. 어쩌다 귀가가 늦어지면 부모님은 저녁밥상을 물리고 모두를 기다리게 하셨기에, 우리들은 서로 서로 저녁 식사시간을 맞추려고 노력했던 어린시절이 너무도 그립다. 성장하면서 나의 존재가 궁금해지는 사람들은 가족을 넘어 점차 친구로 확장되었다. 지금은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성경에서 신()이 인간에게 처음으로 하는 질문이 바로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이다. 첫 사람 아담은 감미로운 유혹에 신()인 하느님께서 준단 하나의 금령을 어기고 만다. 금령을 어긴 후 아담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에 신()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고자, 그분의 현존에서 벗어나고자 숨고 만다.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신()이신 하느님께서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찾고 부르신 것일까? 아니다. 아담에게 자신을 변론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일 것이다. 하느님은 사람을 손으로 빚으시고 코에 친밀과 사랑의 표시인 입김을 불어넣으시어 창조하셨다(창세 2,7참조). 그리고 인간에게 금령을 지키지 않을 경우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세 2,17)라고 말씀 하셨다. 하지만 하느님은 금령을 어긴 아담을 호출하여 당신 자신께서 하신 말씀(“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을 스스로 어기시고 아담이 살아갈 수 있도록 가죽옷을 입혀 낙원에서 쫓아낸다. 첫 사람이 낙원에서 쫓겨났으니 분명 죽음이겠지만, 다른 문을 여시어 그리로 들어가게 하셨다.

너 어디 있느냐?”라는 질문은 분명 아담 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질문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각자에게 주어지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이 질문은 나의 삶을 통해 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답을 찾으려는 노력 자체가 정답이 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너 어디 있느냐?”고 타인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하여 늘어나는 고독사(孤獨死)에도 서로서로를 외면하고 만다. 무관심이 죽음을 엄습한 것이다. 옆집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도무지 관심이 없고 현관문은 이미 철옹성이 되었다. 무관심은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에게 우는 능력을 잃게 하였다. 우리가 우는 능력이 있다면 자연스레 무관심도 치유되지 않을까?

너 어디 있느냐?”라는 물음에 , 저 여 있습니다.’ 라고 우리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한다. “너 어디 있느냐?”라는 물음에 부끄러움과 두려움에 숨지 말아야 한다.

나는 지금 내게 주어진 세상 어디쯤와 있을까?’ 하고 자문해 보자.

2학기를 맞이한 우리 가톨릭 관동대인들은 너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서 살아가기를 바란다. 우리의 작은 관심이 누군가에게는 밥이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사랑이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어 꺼져가는 불꽃을 살리는 불쏘시개가 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기숙사 룸메이트에게, 통학하는 학우에게, 연락이 끊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너 어디 있느냐?”하는 애정어린 말로 다가가 우리 모두에게 기쁨과 행복이 넘쳐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자신있게 대답하는 가톨릭 관동대인이 되기를 바란다.

바람이 분다.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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