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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칼럼] <‘무지의 장막’이 필요한 사회>
2018년 05월 04일 (금) 11:30:55 이서영 강원도민일보 기자 ckunp@cku.ac.kr

#1.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첫 번째 결혼 이야기를 다룬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는 젊은 시절 호킹이 여자친구 제인과 사랑에 빠져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갑작스럽게 근위축성 측삭경화증(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좌절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제인은 호킹의 병을 알게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2. 한지민과 박형식이 주연을 맡으면서 화제를 모았던 단편영화 두개의 빛-릴루미노에서 두 사람이 연기한 안수영과 서인수는 저시력 장애를 가졌지만 이를 극복하고 꿋꿋이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로 그려진다. 영화는 특히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고 있는 남주인공 서인수가 날이 갈 수록 점점 더 시력을 잃게 되는 과정을 주요하게 다루는데 이때 관객들은 그가 느끼는 불안감과 우울감을 고스란히 전달받는다.

#3.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대회에서 크로스컨트리 7.5km 남자좌식부문 금메달을 따내며 철인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신의현. 그는 12년 전까지만 해도 부모와 함께 농사를 짓던 건장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20062. 신의현은 운전 중 마주오던 차와 정면충돌을 했고 이 사고로 결국 두 다리를 자르게 된다. 3년간 세상에서 멀찍이 떨어져 살던 그는 장애인 스포츠를 통해 운동의 즐거움을 알게되고 2015년 노르딕스키에 입문, 1년 만에 세계 정상급 선수로 성장한다.

   이 세가지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들이 후천적 장애인이라는 것. 사실 주인공이 이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설정은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쓰이곤 한다.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일상에서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실제 최근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추정 장애인구는 267만명으로 전 인구 대비 장애출현율은 5.39%였다. 한국인 100명 중 5명은 장애인이라는 얘기다. 특히 이들 장애인의 경우 88.1%, 10명 중 8명은 후천적 원인으로 인해 장애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질환으로 인한 장애가 56.1%로 가장 많았고 사고가 32.1%로 뒤를 이었다. 이에 비해 선천적 원인은 5.1%에 불과했다.

우리 중 누구라도, 혹은 그 주변인이라도 불의의 사고 또는 병으로 인해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이 작은 가능성 때문에 우리는 장애인 문제를 그저 타인의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다. ‘그들의 문제는 언제든 나의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직 장애인들에게 친근하지 못하다. 그 모습이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난 사례가 지난해 큰 이슈를 낳았던 특수학교 설립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난해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주민설명회장에서 장애 학생 부모들은 극렬하게 반발하는 주민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주민들의 반대 논리는 간단 명료했다. ‘혐오 시설인 장애인 특수학교가 마을에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특수학교 설립에 난항을 겪고 있는 지역은 강서구 뿐만이 아니다. 강원도 동해시도 똑같은 일을 겪고 있다.

장애인도 엄연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의무와 권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과연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있는가에 대한 부분은 생각해 봐야할 문제다.

장애인들은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지난 장애인의 날에도 장애인들은 거리로 나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대다수의 투쟁이 그래왔듯 장애인들의 그것 또한 평화롭지만은 않다. 그래서 때로 이들에게는 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꽂히기도 한다. 그러나 절박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 대해 한번쯤 역지사지의 마음을 품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철학자 존 롤스는 자신의 저서인 정의론에서 사회구성원은 이해와 주장이 서로 부딪칠 때, 모든 사람이 정의롭게(공정하게) 서로 공생하는 제도와 규칙을 고안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사회적 계약을 약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합의의 공정성을 보장하면서 합당한 정의의 원칙을 도출하기 위한 제약 조건으로 무지의 장막을 내세운다. ‘무지의 장막은 합의 당사자들이 자신의 타고난 능력이나 심리상태, 가치관, 사회경제적 지위 등을 알 수 없게 만드는 가상적 장치다.

만약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 당사자들이 이 무지의 장막뒤에 있다면 어떤 합의에 이르게 될까. 본인이 다수인지 소수인지, 약자인지 강자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인 만큼 아마도 가장 공정하면서도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을까. 인간이란 그럴 수 밖에 없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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