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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진흙 속에서도 재능을 꽃 피우다
2018년 03월 30일 (금) 23:04:28 송예빈 기자 martha@cku.ac.kr
   

우리 국문학사에 허난설헌을 조선조 최고의 여성 시인이라는 점에 대해선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는 1563년 강릉 초당에서 부친 허엽(許曄)과 강릉 김씨(江陵 金氏) 김광철(金光轍)의 딸 사이에서 셋째 딸로 태어났다. 양천 허씨 5문장가 명문 집안에서 어렸을 때부터 부친 허엽과 오라버니 허성·허봉의 영향을 받았으며, 허씨 집안과 교분이 있던 이달(李達)로부터 시를 배웠다. 주지하듯이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지어 신동이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

생전에도 난설헌의 명성은 익히 알려져 있었으나, 주변에서는 시댁과의 갈등, 그리고 남편과의 불화로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였으나 사후 중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후대에 이르러 난설헌의 시세계가 사대부 사이에 회자되면서 뒤늦게 그의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그의 시 168편을 수록하여 1612년 중국에서 펴낸 취사원창(聚沙元倡)이 발굴되어 전해진다.

허난설헌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 중기로 유교적 질서와 가부장적 사회제도가 성행하던 시기였다. 문학적 배경은 허난설헌(1563), 황진이(1506), 신사임당(1504)과 함께 조선시대의 3대 여류 시인이다. 조선 봉건사회는 서민뿐만 아니라 양반가의 여성에게 조차 배움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난설헌은 둘째 오라버니 허봉을 통해 손곡 이달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특히 그녀가 일곱 살 때 지은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은 그녀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대 문장이다. 일곱 살의 어린 소녀가 선녀가 살고 있다는 상상의 달세계의 궁전이라는 광한전과 상상속의 하늘의 황재가 살고 있다는 백옥루를 연상하며 그 궁전을 건축하는 상량문을 지었다는 것은 그 당시 문인재사들을 놀라게 하는 사건이었다.

난설헌의 작품세계는 여러 연구자들의 의해 평가되었다. 그 중에서 선험적 연구를 했던 허미자 교수는 시를 통해 나타난 난설헌의 시세계를 동요하는 불안의식’, ‘꿈과 상승의 이미지’, ‘눈물과 헌신의 이미지’, ‘나르시시즘, 콤플렉스등으로 분석하였다. 김용숙 교수는 제재상으로는 ()과 꿈의 세계’, 시용어에 있어서는 ()와 한()의 세계를 적출하였으며, 문선규 교수는 원사적(怨思的감개적(感慨的)이라고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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