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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나
2017년 12월 04일 (월) 16:03:04 윤창렬 기자 ychr0061@cku.ac.kr

저녁 840, 나의 스마트폰에서 익숙한 알람이 울린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안부 전화 시간을 알려주는 알람이다. 매일 이렇게 840분에 안부 전화를 드리는 것이 이제는 어엿 8년이 되어간다.

내가 조부모님에게 전화를 시작한 건 20102월서부터이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졸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중학교 1학년이 된다는 생각에 들떠있는 상태였다. 어느 때와 같이 초등학교 졸업식을 준비하기 위해 어머니 차를 타고 학교로 통학하고 있는 도중 청천병력 같은 소식을 외삼촌으로부터 듣게 된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리셨고, 계속 믿을 수 없다며 외삼촌에게 소리 지르셨다. 하지만 나는 당시 어머니의 슬픔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외할머니에 대해 별다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외할머니는 20081월에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자 8남매 중 4째인 어머니께서 외할머니를 모시겠다고 하셔서 우리가족의 옆집으로 이사 오시게 되었다. 그전에도 외조부모님께서는 우리 집과 차로 10분정도의 거리에서 살고 계셨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한 죄책감에 외할머니만큼 정성껏 보살피고 싶은 마음이 컸던 모양이다. 하지만 외할머니가 옆집으로 이사를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추석, 설날과 같은 명절에만 외할머니댁을 방문하고 그 외에는 방문하지 않았다. 아니 방문하기 싫었다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당시 나는 외할머니의 퀘퀘한 냄새가 불쾌했고, 외할머니가 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짜증이 났고, 외할머니의 모든 것이 싫었다.

이렇게 외할머니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만 가득한 채 장례식을 치루는 도중 이라는 의식을 치르게 될 때 나는 비로소 죄책감을 느꼈다. 퀘퀘한 냄새가 나고, 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외할머니이셨지만 손자가 왔다고 항상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시던 외할머니이셨다. 하지만 외할머니께선 그런 웃음을 찾아볼 수가 없었고, 차가운 몸 상태로 조용히 누워만 계셨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이 정말 컸다. 그리고 외할머니와 나의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에 스스로 자책을 했다.

그 사건 이후에 현재 내가 조부모님을 만나고 서로 대화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고, 이제는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로 다짐했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도 늙어간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흰머리카락이 늘어나기 시작하셨다. 할아버지는 날이 갈수록 거동이 불편해지셨다. 할머니는 자꾸 키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허리를 아파하기 시작하신다. 시간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 나는 어떻게 하면 11초라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시간을 유익하게 보낼 수 있을까? 라고 고심한 끝에 찾아낸 방법이 바로 안부전화였다.

오늘도 오후 840분에 내 스마트폰에서는 알람이 울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익숙한 번호로 전화를 걸을 것이다.

여보세요?”

할머니. 손자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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