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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칼럼]각자도생의 아름다운 사회
2016년 10월 08일 (토) 15:12:07 최강민 VERUM교양대학 초빙교수, 문학평론가 ckunp@naver.com

절망적인 현실과 미래를 뜻하는 헬조선은 2010년대 대한민국의 위기를 알려주는 뜨거운 상징이 되었다. 자학과 냉소가 만들어낸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희망을 찾기 힘든 청춘들의 비명이다. 한국인들은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아니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서도 쉼없이 노오력한다. 이렇게 노오력 했어도 현재와 미래의 삶은 암울하기만 하다. 생존에 대한 상시적인 불안과 공포는 이 시대의 실존이다. 한국이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금메달을 계속 수상하는 것은 이 시대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헬조선을 만든 진앙지는 적자생존의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시대의 진리로 내세운 신자유주의 체제다. 오만한 자본주의가 탄생시킨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비정규직과 계약직 노동, 사회 양극화 현상은 급증했다. 과도한 노동의 유연화와 성과급 제도는 평생직장과 중산층의 붕괴를 의미했다. 세월호 참사와 쌍용자동차 대량 해고처럼 국가와 회사는 개인의 생존을 전혀 보장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인 을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리된 탓에 조직적인 연대를 통한 투쟁도 쉽지 않다. 이제 국민이나 노동자들은 한정된 먹이감을 놓고 콜로세움의 검투사처럼 상호 경쟁하면서 싸워야 한다. 제각기 살아나갈 방도를 찾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사회에서 증오, 자학, 혐오는 전염병처럼 번지며 인간을 벌레로 추락시킨다.

트리나 폴러스의 명작 동화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주인공인 노랑 애벌레는 애벌레 기둥에 오르기 위해 다른 애벌레를 짓밟으며 기를 쓰고 올라간다. 노랑 애벌레는 정상에 올라 승자가 되었지만 행복하지 않다. 노랑 애벌레는 적자생존, 무한경쟁이 지배하는 서열화 된 애벌레 기둥을 거부하고 고치를 통해 아름다운 나비가 된다. 우리는 어린 시절 이 동화를 읽으며 아름다운 나비의 삶을 꿈꿨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현재 이 동화의 결론과 달리 애벌레 기둥을 최고라고 선전하는 역주행을 한다.

각자도생의 징후를 보이는 대한민국에서 최근 입양된 6살 여아가 양부모에 의해 살해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이웃들은 양부모에 의한 여아의 학대 사실을 알았음에도 각자도생의 사회이기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이 사건은 다음처럼 해석된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것은 각자의 책임이다. 6살 여아의 죽음은 양부모의 학대에도 견딜 수 있도록 자신의 심신을 단련하지 못한 노오력 신공의 부족이 낳은 결과다. 20대 청춘의 암울한 미래상도 마찬가지다. 농민인 백남기 씨가 시위 도중에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다가 최근에 사망한 것도 노오력 신공을 통해 금강불괴의 몸으로 자신을 단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위대한 대한민국의 시스템은 전혀 문제가 없다. 백남기 개인이 약해서 사망한 것이기에 그의 죽음은 외인사가 아니라 병사다. 각자도생의 아름다운(?) 사회에서 이러한 해석과 판단은 바로 정전으로 군림한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애국심, 애사심, 이타심, 동료애, 우정은 무가치한 것이기에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국가와 회사가 나의 생존을 보장하지 않기에 타국이나 타회사에 핵심 정보를 팔아 넘겨도 도덕적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각자도생의 사회가 만들어내는 최종 결론은 공동체의 해체이자 망국이다. 헬조선 명칭의 유행은 각자도생의 징후를 증명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우리는 진정 각자도생의 사회를 유토피아로 생각하는 것인가? 이제 각자도생의 사회로 나아갈 것인지, 단호하게 거부할 것인지 결단해야 할 순간이다.

절망적인 현실과 미래를 뜻하는 헬조선은 2010년대 대한민국의 위기를 알려주는 뜨거운 상징이 되었다. 자학과 냉소가 만들어낸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희망을 찾기 힘든 청춘들의 비명이다. 한국인들은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아니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서도 쉼없이 노오력한다. 이렇게 노오력 했어도 현재와 미래의 삶은 암울하기만 하다. 생존에 대한 상시적인 불안과 공포는 이 시대의 실존이다. 한국이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금메달을 계속 수상하는 것은 이 시대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헬조선을 만든 진앙지는 적자생존의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시대의 진리로 내세운 신자유주의 체제다. 오만한 자본주의가 탄생시킨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비정규직과 계약직 노동, 사회 양극화 현상은 급증했다. 과도한 노동의 유연화와 성과급 제도는 평생직장과 중산층의 붕괴를 의미했다. 세월호 참사와 쌍용자동차 대량 해고처럼 국가와 회사는 개인의 생존을 전혀 보장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인 을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리된 탓에 조직적인 연대를 통한 투쟁도 쉽지 않다. 이제 국민이나 노동자들은 한정된 먹이감을 놓고 콜로세움의 검투사처럼 상호 경쟁하면서 싸워야 한다. 제각기 살아나갈 방도를 찾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사회에서 증오, 자학, 혐오는 전염병처럼 번지며 인간을 벌레로 추락시킨다.

트리나 폴러스의 명작 동화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주인공인 노랑 애벌레는 애벌레 기둥에 오르기 위해 다른 애벌레를 짓밟으며 기를 쓰고 올라간다. 노랑 애벌레는 정상에 올라 승자가 되었지만 행복하지 않다. 노랑 애벌레는 적자생존, 무한경쟁이 지배하는 서열화 된 애벌레 기둥을 거부하고 고치를 통해 아름다운 나비가 된다. 우리는 어린 시절 이 동화를 읽으며 아름다운 나비의 삶을 꿈꿨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현재 이 동화의 결론과 달리 애벌레 기둥을 최고라고 선전하는 역주행을 한다.

각자도생의 징후를 보이는 대한민국에서 최근 입양된 6살 여아가 양부모에 의해 살해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이웃들은 양부모에 의한 여아의 학대 사실을 알았음에도 각자도생의 사회이기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이 사건은 다음처럼 해석된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것은 각자의 책임이다. 6살 여아의 죽음은 양부모의 학대에도 견딜 수 있도록 자신의 심신을 단련하지 못한 노오력 신공의 부족이 낳은 결과다. 20대 청춘의 암울한 미래상도 마찬가지다. 농민인 백남기 씨가 시위 도중에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다가 최근에 사망한 것도 노오력 신공을 통해 금강불괴의 몸으로 자신을 단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위대한 대한민국의 시스템은 전혀 문제가 없다. 백남기 개인이 약해서 사망한 것이기에 그의 죽음은 외인사가 아니라 병사다. 각자도생의 아름다운(?) 사회에서 이러한 해석과 판단은 바로 정전으로 군림한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애국심, 애사심, 이타심, 동료애, 우정은 무가치한 것이기에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국가와 회사가 나의 생존을 보장하지 않기에 타국이나 타회사에 핵심 정보를 팔아 넘겨도 도덕적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각자도생의 사회가 만들어내는 최종 결론은 공동체의 해체이자 망국이다. 헬조선 명칭의 유행은 각자도생의 징후를 증명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우리는 진정 각자도생의 사회를 유토피아로 생각하는 것인가? 이제 각자도생의 사회로 나아갈 것인지, 단호하게 거부할 것인지 결단해야 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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