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9. 3. 13 수 20:51
학위수여식,
   
> 뉴스 > 여론칼럼
     
[교수 칼럼]버려진 아이들
2016년 06월 05일 (일) 16:00:23 최용훈 yhchoi@cku.ac.kr

오늘 이상의 수필집 권태중의 이야기 하나를 읽고 온 종일 마음이 찡하다. 뭐라고 말 할 수 없는 애절함과 쓸쓸함이 가득하다. 그리고 어린 시절 골목을 뛰어다니며 들었던 그 소리들이 다시 들려왔다. 그 시절의 소리들. 엿장수의 가위 치는 소리, 두부장수 종소리, 나를 부르는 엄마의 소리. 그렇게 동심으로 돌아갔는데 왜 마음이 이렇게 아려올까.

가난한 시골 마을, 어린 아이들이 놀고 있다. “돌멩이를 주워 온다. 풀을 뜯어 온다. 돌멩이로 풀을 짓찧는다. 푸르스레한 물이 돌에 가 염색된다. 그러면 그 돌과 그 풀은 팽개치고 또 다른 풀과 돌멩이를 가져다가 똑같은 짓을 반복한다. 10분 동안이나 아무 말도 없이 잠자코 이렇게 놀아 본다.” 지루해진 아이들은 일어서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흔든다. 비명을 질러본다. 이상은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가난한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장난감 하나 사줄 수 없었다. 너무 바빠서 같이 놀아줄 수도 없었다. 이래저래 또 다시 지루해진 아이들은 이제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낸다. 다 같이 주저앉아 한 무더기씩 대변을 본다. 그리고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그 중 한 아이가 도무지 일어나지 않는다. 대변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태를 읽으며 나는 대학 시절에 읽었던 또 한편의 글을 떠올렸다. 한수산이 쓴 수필 속의 아이들은 도시의 아이들이었다. 아파트의 아이들. 그들은 거리에서 파는 병아리를 사와 아파트의 옥상 위에서 그것을 날린다. 아직 날개 펼 힘도 없는 어린 생명을 허공에 날린다. 수 십 년의 간격을 두고 나온 이 두 수필은 이상하게도 내게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이 오버랩 되고 권태가 느껴지고 그리고 진한 안타까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난 오늘의 아이들을 생각한다. 외로운 아이들. 엄마 아빠는 일하러 나가고 아파트 문을 열고 텅 빈 집으로 들어온 아이들은 책가방도 벗기 전에 컴퓨터 앞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현란한 색채의 게임에 몰두한다. 모두 똑 같은 표정이다. 아니 표정이 없다. 마치 흰 색 가면을 쓴 연극무대의 좀비들 같다. 다른 것은 내가 느끼는 감정뿐이다. 섬뜩하다. 병아리를 던지는 짓궂은 아이들의 잔인함보다도 더 서늘한 냉담함. 누구도 자신의 세계에 들어올 수 없다는 듯 앙다문 입, 깜박거리는 눈. 그것들이 날 두렵게 한다. 저들을 안아줘야 하는데.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어야 하는데. 어른인 나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 상념의 끝자락에 한 여학생을 면담했다. 자퇴 원서를 들고 찾아온 그녀 얼굴에도 표정은 없었다. 늘 무표정하고 냉소적이고 무심해보였던 그녀였다. 입학 후 4년의 대학생활 중 반복된 휴학, 세 번의 학사경고 그리고 이제 무표정한 얼굴로 자퇴를 위해 내 도장을 받으러온 그녀. 학과생활에도 무관심하고 친구도 없고, 어쩌다 수업에 와서는 늘 딴 생각만 하는 것 같았던 그 여학생. 나는 남은 학기를 채우고 차라리 다음 학기에 휴학을 하라고 권했다. 그리고 나중에 사정이 나아지면 대학 졸업장이 꼭 필요할지 모른다고, 졸업장이 없는 것과 있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젊은 시절이 고생스럽다고 이렇게 포기하면 안 된다고 설득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전화해서 휴학은 몇 학기까지 가능한지 장학금 신청을 하려면 최소 몇 학점이나 얻어야 하는 지를 묻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퇴 후라도 재입학이 가능하다는 교무처 직원과의 통화를 듣고 난 후에 그녀의 얼굴에 묘한 안도감이 떠오르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리고 그제 서야 중간고사 이전에 휴학을 하면 등록금 전액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 기간은 놓쳤고 자퇴라도 하면 등록금의 3분의 2는 돌려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난 순간 화가 났다. 장학금 신청도 안 될 만큼 학점 관리도 못하고, 이제 자퇴 원서를 들고 온 마당에 무슨 등록금 반환 타령인가. 좀 더 신경 썼으면 국가장학금도 있고, 가정 형편에 따라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도 많은데... 이렇게 무책임한 아이에게 뭐라고 해야 하나. 나는 한숨을 쉬며 자퇴하더라도 재입학이 가능하다니 절대 학업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리고 어렵게 입을 뗀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새어머니와 같이 살던 그녀는 대학 입학 후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자 홀로 독립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고 했다. 잦은 휴학에 친구도 못 사귀고 선생님들과 진지한 대화도 나눠보지 못 했다고 했다. 순간 나는 그 여학생의 생활이 어땠을 지를 짐작하고 뭔가 위로의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겨우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으면 내게 전화해.’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 순간 그 무표정한 얼굴 위로 그녀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가 나간 연구실 문을 바라보며 난 생각했다. 그들에게는 눈물이 없는 줄 알았는데... 권태 속의 아이들, 병아리를 날리던 아이들, 그리고 무표정하게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들. 그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문제였다. 아이들의 무표정함에 속아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외면하고 속으로 그 철없음을 나무라던 어른들이 문제였다. 그 외로운 아이들을 안아줄 마음 없이 인색했던 내가 정말 싫었다.

미안하다...

ⓒ 가톨릭관대신문(http://news.cku.ac.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신문사소개 기사제보 광고문의 제휴안내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210-701 강릉시 범일로 579번길 24(내곡동) | 전화 : 033)649-7880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창희
Copyright 2008 가톨릭관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ckunp@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