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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칼럼]길을 잃게 하는 우측통행
2016년 06월 05일 (일) 15:24:15 박선희 applelppa@hanmail.com

대전에 갈 일이 있어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서울역에 도착한 것은 오전 820. 개찰구를 통과한 나는 오싹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어디론가 일제히 진군하는 두 갈래 인간의 물결. 출근시간의 직장인들이 우측통행을 준수하며 급물살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저벅저벅저벅…… 무표정한 발짝 소리가 끝없이 이어지며 지하 통로를 울렸다. 늦은 아침에야 하루를 시작하는 나에겐 낯설고 기이한 풍경이었다.

잠시 멍하게 서 있다가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검은 비행물체가 내 뒤에서 앞으로 천장 밑을 휙 날았다. 비둘기였다. 이 지하세계에 비둘기라니? 예기치 않은 광경은 그 아침 지하철 역사에서의 기이한 느낌을 더욱 증폭시켰다. 비둘기는 지상으로 이어지는 오른쪽 통로가 아니라 왼쪽 통로로 꺾어져 모습을 감추었다. 환승을 위한 이동로였고, 지상으로 나가기엔 더욱 어려워지는 길이었다. 비극의 순간인 듯 내 입에선 아, 하는 탄식이 새어나왔다.

2009년 우측통행 시행 초기, 동대문역 지하역사에서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지하철에서 내려 환승을 하러 가던 중이었다. 두 남자가 양떼몰이를 하듯 사람들을 한쪽으로 몰고 있었다. “오른쪽! 오른쪽!” 나는 곧 그들이 우측통행을 유도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환승로는 한가한 편이었고 우측으로 가든 좌측으로 가든 문제될 게 없었다.

철도공무원으로 보이는 그들은 내 눈앞에 긴 나무막대를 휘저으며 또 한 번 우측통행!”을 외쳤다. 강압적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완장을 찬 일제의 앞잡이라도 만난 듯 몹시 불쾌했다. 민주화를 후퇴시키고 있는 편향의 이명박 정권에 피로감이 심했던 때라 내 몸속에 날카로운 가시가 돋는 듯했다. “내가 어디로 걷든 무슨 상관이에요?” 이렇게 쏘아붙이자 그들은 주춤하더니 다른 곳으로 갔다.

오래 전 인도 여행 때 뉴델리에 도착해 보았던 카오스의 거리가 떠올랐다. 자동차와 릭샤, 오토바이, 사람들, 소들과 개들이 함께 뒤섞여 아무런 규칙 없이 제 갈 길을 가는데, 아무런 충돌 없이 수십 개, 수백 개의 흐름이 물결처럼 자연스럽게 그려지고 있었다. 그것은 카오스이자 코스모스였고, 나는 엄청나게 복잡하면서도 별 갈등 없이 평화로운 거리를 입을 딱 벌린 채 바라보았다. 인도의 교통사고율이 우리나라보다 현저히 낮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규율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나에겐 우측통행을 강제하는 우리의 보행 시스템이 파쇼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심지어는 우리의 몸을 오른쪽으로 길들여 머릿속까지 오른쪽으로 향하도록 만들려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지 않나, 의심까지 든다. 우측통행 홍보를 위한 근거 없는 연구 보고서와 조작된 실험 결과에 대한 뉴스는 그런 의심을 단단하게 만든다. 오른쪽으로 가든 왼쪽으로 가든 사고의 위험 없는 지하 통로에서 왜 아무 의미 없는 오른쪽을 강요하는가?

비둘기가 지하철 역사로 날아들었을 때, 사람들이 자율 보행의 자연스런 흐름으로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비둘기는 제 친구들이 과자 부스러기를 쪼고 있는 광장과 칙칙하지만 드높이 열린 하늘을 감지해 금세 길을 찾아 나가지 않았을까? 암울한 미래를 보는 것 같았던 그 아침, 나는 삐딱이가 되어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중앙 경계선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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