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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해서 남 주자
2009년 09월 10일 (목) 16:13:56 황루시 교수 kdunp@hanmail.net
 

  “공부해서 남 주자” 이건 유행가 제목이다. 시원한 목소리로 강산에가 불렀다. 강산에는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렇게 인간답게 살자고 노래한다. 하지만 그걸 실천하기는 제법 어렵다.

 적어도 조선조 이후부터 우리 사회는 소위 먹물들이 지배했다. 지금도 공부를 많이 하여 책상 앞에 앉아 근무하는 사람의 봉급이 땀 흘려 노동하는 사람보다 월등하게 높다. 책상물림들이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관리하고 군림하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자식을 대학에 보내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아직도 유효한 부모님의 주장은 공사판이나 공장에서 죽을 때까지 고생고생 일하지 않으려면 대학에 가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고 노후까지 편안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른이면 누구나 하는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속에는 결국 그 공부로 남을 지배하라는 논지가 깔려있는 셈이다.

  그렇게 공부해서 무엇이 되나? 요즘 어린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부자가 되겠다고 한다. 대학생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물으면 상당수가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한다. 무엇을 하든 돈을 벌겠다는 야심은 공통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겠다는 것이 나쁠 게 무엇인가. 하지만 돈을 많이 벌어서 도대체 어디에 쓰려는 것인가. 그게 문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식은 곧 돈이고 힘이다. 지식으로 보다 쉽게 돈을 벌 수 있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회적 위치에 도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힘은 그 자체로 아무 의미가 없다. 실력, 학력, 재력, 권력, 힘은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때로 폭력이 되고 때로 구원이 되며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또 살리기도 한다.  

  개강을 했다. 방학동안 느슨했던 마음을 다 잡고 공부해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출세하겠다고, 돈 많이 벌겠다고, 그래서 저와 제 식구만 잘 살겠다고 공부한다면 그건 매우 반지성적인 일이고 남을 짓밟겠다는 반윤리적인 일이며 무엇보다 쪽팔리는 일이다. 이제 우리 행동하는 양심이 되기 위해서 공부를 하면 어떨까. 이웃을 돕고 인류를 살리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 남에게 주기 위해서 공부한다면 훨씬 더 신명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황루시(미디어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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