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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어디까지 아니?
2016년 04월 30일 (토) 10:01:00 오준석 기자, 이연제 기자 dhrhdths93@naver.com

 애니메이션의 태동

  애니메이션은 만화나 인형을 이용하여 그것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촬영한 영화를 뜻한다.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영화의 역사보다도 길다. 영화가 탄생하기 이전인 1888년 프랑스의 에밀 레이노는 동화를 영사하는 장치인 프락시노스코프를 발명하고 빛의 극장이라는 이름으로 파리에서 흥행화시켰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활동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된 데 이어, 1906년 미국의 스튜어트 블랙턴은 애니메이션 영화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요술 만년필을 발표하였으며, 1908년에는 프랑스의 에밀 콜이 세계 최초의 만화영화 팡타스마고리를 비롯하여 인형영화·그림자극영화 등을 제작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는 기술적으로 애니메이션의 원리를 실현하였지만, 스토리나 캐릭터 설정 등이 제대로 되지 않은 미완성 애니메이션에 불과해 그 인기가 미미했다. 그러다 1914년 캐릭터 설정이 이루어진 애니메이션 공룡 거티가 나오면서 사람들은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알아봤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후 1930년 애니메이션은 디즈니스튜디오의 등장과 함께 전성기를 맞이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역사

전 세계적으로 애니메이션의 중심에는 미국의 디즈니와 일본의 지브리가 있다. 디즈니는 애니메이션의 교과서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꼽힌다. 현재 애니메이션의 기술, 양식, 내용 등은 1930년대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확립된 내용들로 애니메이션이 지향해야 할 모든 구조의 행위양식을 월트 디즈니사가 규정해 오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전성기를 꽃피우게 한 월트 디즈니는 디즈니 스튜디오(이하 디즈니)를 차리고, 1928년 첫 작품인 미키마우스 시리즈를 통해 최초의 발성(토키)작품인 증기기선 윌리를 탄생시킨다. 뒤이어 시리 심포니 시리즈이자 최초의 색채작품 숲의 아침을 세상에 선보이며 애니메이터로서의 성공을 굳건히 했다.

단편영화의 지속적인 성공으로 디즈니는 1937년 장편 영화 사업을 시작하였고, 영어권에서 최초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이자 테크니컬러 작품인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발표했다. 백설공주는 19382월 개봉하여 전례가 없는 높은 흥행을 기록하였고, 뒤이어 제작된 수많은 후속 장편 영화 작품, 디즈니 클래식의 시초가 되었다. 이 영화는 멀티플랜 테크니컬러로 개봉하였는데, 멀티플랜 카메라와 테크니컬러가 함께 쓰인 것은 당시의 애니메이션 작품에서는 생소한 것이었다. 덤보, 신데렐라와 같은 장편영화들이 연달아 성공하면서 디즈니에서는 장편 애니메이션 직원들에게 실험적이고 양식화된 영화를 만들어내도록 지시하였고, 환타지아잠자는 숲 속의 공주등을 개봉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작품들은 계속해서 성공하지 못하였으며 개봉 후 10년간 금전적 손해를 회복하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1966년 월트 디즈니가 사망하고 애니메이션 부서는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고난의 시간들을 이어갔다.

디즈니는 1989년 영화 인어공주로 재기에 성공했고, 이것이 익히 알려진 디즈니 르네상스의 시작이었다. 이 시절 동안 디즈니는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이 성공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전통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하던 디즈니는 좋은 박스 오피스 수익을 거두지 못하였다. 디즈니는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월트 디즈니 피처 애니메이션을 CGI 스튜디오로 변경하고, 전통 애니메이션 관련 설비를 처분하였다. 이후 2004년 디즈니는 카우 삼총사가 마지막 2D 전통 애니메이션 영화가 될 것이며, 치킨 리틀을 시작으로 앞으로의 디즈니 스튜디오의 영화는 CGI가 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디즈니는 2009년에 들어서 2D 전통 애니메이션인 공주와 개구리의 개봉을 준비하면서 이러한 계획을 철회하였다.

이처럼 디즈니 스튜디오는 다사다난한 역사를 가지고 지금까지 그 이름을 이어오고 있는데, 최근 다시 한 번 디즈니의 명성을 일깨워 준 애니메이션으로 겨울왕국, 빅 히어로, 주토피아등이 있다. 특히 겨울왕국 같은 경우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 사상 처음으로 천만관객을 동원하는 등 개봉한 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역사

미국에 디즈니가 있다면, 일본에는 지브리가 있다고 할 만큼 애니메이션을 논할 때, 지브리 스튜디오를 빼놓을 수 없다. 스튜디오 지브리(STUDIO GHIBLI)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제작한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인 톱 크래프트를 모체로, 다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가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을 목적으로 1985615일에 설립했다. 지브리(GHIBLI)라는 이름은 원래 모래 폭풍을 가리키는 이탈리아어로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 공군의 비행기 이름으로 사용되었는데, 어린 시절 집안 환경으로 비행기에 무척 관심이 많았던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를 스튜디오의 이름으로 채용하는 것을 제안하여 스튜디오 이름으로 정해졌다.

지브리 스튜디오가 애니메이션 대국인 일본에서도 유독 남다른 것은 대세를 따라가지 않고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통해 애니메이션계에서 경쟁력을 키워온 덕분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만화책 인기로 검증받은 작품을 판권계약에 의해 애니메이션화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원피스, 나루토등 인기 만화의 애니메이션은 작화가 크게 나쁘지 않다면, 만화의 인기를 그대로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제작사들 입장에서 부담이 적다. 반면에 지브리 스튜디오는 주로 창작 시나리오를 사용하여 대중들이 이전에 접한 적 없는 신선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지브리하면 작화를 빼놓을 수 없다. 일본의 주류 애니메이션이 깔끔한 작화를 많이 사용하는 것에 비해 지브리는 첫 번째 작품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부터 사용해오던 지브리만의 수채화적이고 서정적인 느낌의 작화를 사용한다. 지브리가 사용하는 작화는 일본에서 서정화라고 불리는데, 세월의 흐름을 덜 타는 편이기에 천공의 성 라퓨타이웃집 토토로와 같이 개봉 20년이 넘은 작품들이 여전히 롱런하고 있는 큰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반대로 오래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코쿠리코 언덕에서처럼 최근에 개봉한 작품도 오래 전에 나온듯한 느낌을 준다.

디즈니가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면, 지브리는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시켰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천공의 성 라퓨타에서와 같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여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는 여성캐릭터는 남자보다 더욱 호소력 짙은 모습을 보여줬다. 작품 속 여성캐릭터와 같이 지브리 작품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생각을 애니메이션 속에 담아낸다. ‘생명의 존엄성’, ‘자연의 위대함’, ‘인간의 가치와 운명등 결코 가볍지 않은 가치관과 사고를 내포하여 아이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대중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대표작으로 모노노케히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벼랑 위의 포뇨등 다수가 있지만, 지브리 원년멤버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후계자를 찾지 못하고 현재에는 잠정 제작중단을 선언한 상태이다.

 

 

태권브이에서 뽀로로까지, 한국의 애니메이션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의 상영은 1910년대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1918년 닛캇츠에서 제작한 원숭이와 게의 전쟁등이 부산 상생관(相生館)에서 상영된 기록이 있다. 최초의 한국 애니메이션은 1956HLKZ·TV에 방영되었던 OB시날코 광고이다. HLKZ의 미술담당이던 문달부가 전 과정을 혼자 맡아 제작했다. 1961년에는 국립영화제작소의 한성학, 박영일, 정도빈이 공동으로 35mm 칼라애니메이션 개미와 베짱이를 제작, 문화영화 형태의 애니메이션도 등장했다.

최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196717일 개봉된 신동헌의 홍길동이다. 이에 영향을 받아 본격적인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속출했다. 1970년대 초반에는 일본에서 수입된 TV애니메이션의 인기로 한국 애니메이션은 침체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76724일 개봉된 김청기의로보트태권브이가 큰 흥행에 성공했다. 로봇태권브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애니메이션 중에 하나로 강동구에는 태권브이 박물관이 있을 정도이다. 태권브이의 영향으로 1980년대 초반까지 로봇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한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만화에 대한 일반의 편견, 영화시장 개방에 따른 경쟁 심화 등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제작은 침체했다.

1980년대 후반, 떠돌이 까치(1987), 달려라 호돌이(1987) TV용 애니메이션이 제작되기 시작하면서 국내 애니메이션은 다시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여기에 1990년대 초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성공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1990년대 중반 첫 성인용 애니메이션 블루시걸(1994)과 이현세 원작의 아마게돈(1996),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얼음별 대모험·(1996) 등이 제작되면서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제작이 다시 시작되었다. 현재는 극장용 애니메이션, TV용 애니메이션 외에도 CF 및 실험적 내용의 단편 애니메이션 등이 제작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으로는 로보트태권브이, 아기공룡 둘리, 날아라 슈퍼보드, 최근에는 뽀로로, 또봇등이 있다. 한국의 애니메이션은 디즈니와 지브리와는 다르게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져 폭 넓은 연령층의 사랑을 받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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