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9. 3. 13 수 20:51
학위수여식,
   
> 뉴스 > 여론칼럼
     
[사설]대학
2016년 04월 02일 (토) 15:57:52 황루시 hrushi@hanmail.com

지난 주말 설악산에 다녀왔다. 응달에는 아직 눈더미가 쌓여있는데 길가에 노란 산수유가 화사하게 피어있다. 내가 참 좋아하는 꽃이다. 봄보다 더 먼저 꽃을 피우고 갑자기 눈이라도 내린 새벽엔 투명한 얼음옷을 입고 끝내 살아남는 꽃이다. 산수유는 아는 것 같다. 어차피 봄은 오고 추위는 길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버티는 놈이 살아남는다는 지혜를 터득한 것이 아닐까. 한참동안 건강하고 토실한 꽃망울을 보다가 산을 내려왔다.

우리 학교도 봄이 한창이다. 요 며칠 날씨가 더워지더니 개나리는 물론이고 벚꽃과 목련이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한다. 하지만 봄을 알려주는 것이 어디 꽃뿐이랴. 꽃보다 아름다운 신입생들 특유의 호기심과 생기로 가득 찬 대학캠퍼스 자체가 바로 봄이 아닌가.

그러나 내 마음은 편치 않다. 웃고 있는 학생들의 얼굴을 보면 덩달아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지만 곧 그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의 고단함이 함께 엉켜 떠오르고 만다. 대학에 들어왔으니 무언가 변화가 생기겠지 막연한 기대감에 부풀어있는 대책 없는 희망도 맘에 걸리지만, 대학에 들어오기 전부터 오로지 안전한 취업을 목표로 학과를 정하고 자신의 청춘을 쏟아 붓겠다는 의지에 찬 모습은 더욱 안쓰럽다. 대학이 과연 이 학생들의 기대와 희망을 성취시켜줄 수 있을까 내심 불안하고 뒤의 경우는 이미 본질이 뒤틀려버린 대학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봄에게 무슨 잘못이 있으랴. 각박한 세상 탓이다. 돌이켜보면 내게 대학은 크리스마스선물 같은 것이었다. 답답했던 고등학교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했다. 미래의 길을 밝혀주는 선생님을 찾았고 평생 함께 갈 친구들을 만났으며 마침내 내가 설 자리를 발견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사회가 이해관계와 수직관계로 정의된다면 대학은 수평공간이다. 자유와 평등이 보장된 가운데 오로지 자신의 성장에만 집중하여 꿈을 키우고 꿈을 위해 매진하는 봄을 만들어 내는 곳이 바로 대학이다. 이런 봄을 거쳐야 행복한 기억의 힘으로 무더운 여름을 지치지 않고 버텨낼 수 있다.

대학의 본질을 외면한 채 국가가 취업의 책임을 대학에 떠넘긴 이후 대부분의 대학은 살아남기 위해 취업학원으로 전락했다. 더 이상 대학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고 말았다. 이런 구조적 모순의 희생자는 결국 학생이다. 인생의 봄을 잃어버린 이 땅의 청춘들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꿈과 이상에 불타는 청년시절이 없다면 비록 세속적 의미에서 성공한 삶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실패한 인생입니다. 대학은 그 사회의 청년시절입니다. 그 사회의 꿈과 이상을 창조하는 독립공간입니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으로부터 독립한 공간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바로 오늘로부터 독립한 공간이어야 합니다. 오늘의 이해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10년 후, 100년 후를 지향하는 대안담론, 미래담론의 창조공간으로 남아있어야 합니다.”

지난겨울 작고하신 신영복 선생님이 대학과 우리 사회에 당부한 글이다. 산수유의 꽃망울처럼 건강한 대학을 희망하면서 선생님을 기억하는 오늘이다.

ⓒ 가톨릭관대신문(http://news.cku.ac.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신문사소개 기사제보 광고문의 제휴안내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210-701 강릉시 범일로 579번길 24(내곡동) | 전화 : 033)649-7880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창희
Copyright 2008 가톨릭관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ckunp@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