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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칼럼]알파고보다 쌍문고?
2016년 04월 02일 (토) 15:18:17 박선희 applelppa@hanmail.com

과연 세기의 대결이었다. 지난 39일부터 15일까지 펼쳐졌던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나만 그런 게 아니었겠지만, 말 그대로 바둑의 자도 모르면서 나는 그 일주일간 이세돌 대 알파고의 경기에 관심이 쏠렸었다. 바둑판을 대한 건 중고딩 때 친구들과 심심풀이 오목을 두려고 종이 바둑판을 만들어 놀았던 게 전부.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게임이라는 바둑은 여가생활로 기원을 찾는 아저씨, 할아버지들의 것인 줄 알았다. TV에서도 바둑 중계는 모두가 잠든 시간에 편성돼 애국가 시청률 정도나 나올까 싶을 만큼 끼워넣기에 가까웠다. 그런데 가로 19, 세로 19줄 바둑판 위에서의 우아한 흑백 싸움에 전 국민, 아니 전 세계가 주목하도록 만든 존재가 있었으니, 그것은 존재라고 하기엔 어딘가 껄끄러운 존재 알파고였다.

연일 빅 이슈였고, 각종 패러디부터 시작해 대국의 불공정성에 대한 논란, ‘인공지능과 인류의 미래에 관한 토론회까지 이야기가 무성했다. 인공지능과 대결한 인간의 3연패는 가히 충격적이었고, 이후 네 번째 대국에서의 1승은 감격의 드라마 그 이상이었다. 가공할 괴물에 맞선 인간 전사의 연이은 패배로 무력감에 빠져 있다가 마침내 인간 정신의 승리와 희열을 맛본 것이다. “이제 우리 아이는 알파고로 보내야 하나?”라고 자조적 우스갯소리를 했던 어느 친구는 알파고보다 (‘응팔최택의) 쌍문고가 낫지라며 위안 아닌 위안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4 1 패배로 끝난 세기의 대결 후, ‘인공지능이 가져올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불안한 상상이 기분 나쁜 공기처럼 우리들 사이를 떠다녔다. 수백만 개나 되는 직업의 사라짐, 이기적 개인이나 집단의 인공지능 오용으로 인한 폭력적인 결과,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났을 때 벌어질 재앙 같은 것들 말이다.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말이 무시무시하게 다가왔다. 인공지능은 스스로 날아오르고, 끝없이 더욱 빠른 속도로 스스로를 새로이 디자인할 것이다. 생물학적 진화에서 점진성의 한계를 가진 인간은 경쟁하지 못하고 그것에 대체될 것이다.”

인공지능에 관한 논의의 결론은 대부분 이랬다. ‘인류사회 발전을 위해 인공지능을 잘 사용하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인간의 합의가 쉽게 쌍문고스러운 인간다움으로 모아지고 인공지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될까? 모든 생물체 중 유독 인간만이 갖는 독식과 지배의 욕망은 이미 세상을 지옥도로 만들어왔다. 인간 의지에 대한 의심이랄까. 인공지능과 관련해서든 아니든 나의 미래 예측은 결코 낙관 쪽으로 향하지 않는다.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답은 인공지능의 사용법에서 찾을 게 아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인간과 인간성, 인간적인 것에 대한 탐구, 즉 인문학(휴머니티)이다. 최근 일고 있는 인문학 바람이 반가운 이유도 그 때문이다. 위기는 적을 알기 전에 우리 자신을 알아야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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