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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칼럼]무지개 단상
2016년 03월 06일 (일) 19:16:02 박선희 applelppa@hanmail.net

대학 동창들과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나까지 모두 일곱 명. 그렇게 한 그룹이 되어 바다 건너 여행을 가는 건 처음이었고, 우린 무척이나 들떠 있었다. 한 친구는 가이드를 자처해 일정을 짰고, 비자림 산책은 빼놓을 수 없다느니, 금능해변에선 바닷물에 꼭 발목을 담가봐야 한다느니, 각자의 필수 코스를 하나씩 내놓기도 했다. 어렵게 시간을 맞춘 여행, 일곱 여자의 기분은 화창하기만 했다.

그런데 제주도 도착과 함께, 우리의 기분처럼 맑기만 했던 하늘이 빠른 속도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세차게 펄럭이는 바람이 방향도 없이 불어댔다. 공항에서 렌트카를 타고 직행한 곳은 용오름. 아름답고도 듬직한 용오름의 기품에 넋이 나가 한 발 한 발 오를 때마다 탄성을 질렀지만, 정상에 이르렀을 땐 무자비한 돌풍에 머리카락이 뒤집혀 쑥대밭이 되고 관자놀이 혈관이 터질 듯 아팠다. 모자와 스카프, 목도리로 친친 감고 난민처럼 오름을 내려오니 굵은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계속되는 비, , . 편의점 비닐우산을 순식간에 뒤집으며 우산살을 처참히 부러뜨리는 비바람은 이틀 동안 쉬지 않고 내렸다. 우리가 계획한 황금 코스도 해변 카페, 커피박물관, 찻집이 있는 갤러리 등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일정이 바뀌었다. 제주의 에메랄드빛 해변과 고요한 숲속 산책은커녕 제주에 와서 고작 악천후에 카페 순례라니. “그래도 친구들과 있으니 그거로 충분해라며 뻥뻥 구멍 난 계획을 수다로 메우는 것도 하루만 흥이 났다. 숙소에 너무 일찍 들어오니 긴긴 밤 제대로 놀리라던 허세도 일찍 수그러들었다.

그렇게 23일을 보내고 느릿느릿 눈을 뜬 아침, 한 친구의 외침에 모두 창가로 모여들었다. “무지개다!” 멀리 흐린 하늘에 커다란 무지개 아치가 거짓말처럼 떠 있었다. 숨은그림처럼 흐릿한 무지개였지만, 궂은 날씨에 시달리다 마지막 날을 맞은 우리에겐 선명한 빨주노초파남보 못지않은 판타지였다. 무지개를 보기 위해 그만큼의 고생이 필요했구나, 생각하는데 누군가 말했다. “한 번 여행은 한 번 인생이야.”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삶을 23일 제주 여행에서 깨달았던 것일까. 하여 폭우가 쏟아지거나 돌풍이 불어도 묵묵히 그 시간을 지나가야 함을 말했던 것일까. 그 뒤에 뜻하지 않게 무지개를 만날 수도 있으니까. 개운해진 맘으로 숙소를 나섰을 때부터 그날 오후 제주공항으로 갈 때까지 비가 또 억수로 퍼부었지만, 아침의 무지개로 충분한 위안이 되었다.

길든 짧든 고난이 있는 이들이 모두 그렇게 무지개를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일요일, TV 다큐를 보며 생각했다. 세월호에서 마지막으로 구출돼 이제 스무 살 성년이 된 아이가 두 친구와 함께 세월호 희생자가 된 친구들의 사진액자를 들고 제주도 수학여행을 완성하는 다큐였다. 인생의 치명적인 고통을 너무도 빨리 겪은 그 아이들은 놀랄 만큼 담담했고, 이젠 볼 수 없는 친구들을 웃으며 보듬는 모습들엔 지켜주지 못했던 어른으로서 또 한 번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여행 후 그들이 만나야 할 무지개는 물론 진상 규명일 것이다. 세월호 사건 2주년을 한 달여 앞두고 마음엔 다시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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