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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민주화의 큰 별 지다
2015년 11월 28일 (토) 20:28:39 오준석 기자 dhrhdths93@naver.com

   지난 1122일 새벽,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뒀다. 김 전 대통령은 2008년 뇌졸중 판정을 받은 이후 합병증으로 인해 퇴원과 입원을 반복하던 중 병세가 악화되어 유명을 달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군부독재에 맞서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끈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정치권뿐 아니라 전 국민적으로 그 충격이 작지 않다.

김 전 대통령은 일찍이 195427세의 나이로 민의원에 당선되어 정치계에 발을 디뎠다. 이후 그는 9번에 걸쳐 국회의원을 지내는 동안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 1983년 광주항쟁 3주년을 맞아 23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군부정권에 맞섰으며, 가택연금을 당하는 등 박해 속에서도 6월 항쟁을 주도했다. 1987년 대선에 출마했으나 야권후보단일화에 실패해 당시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의 당선을 바라보며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이어 1990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노태우, 김종필과 함께 삼당합당을 강행해 야합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이어 1992년 대선에서 14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

대통령 재임기간에는 군부 내 존재했던 하나회라는 사조직을 대대적으로 청산함으로서 군사 쿠데타의 싹을 잘랐고, 비실명 금융거래로 인해 발생하는 부정한 자금이 불법 정치자금·뇌물 등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다. 또한 공직자 재산공개와 공직자윤리법 개정으로 공직사회의 부정부패 척결에 앞장섰고, 총독부 건물 해체와 5·18 특별법을 제정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는 등 핵심 국정 과제인 역사 바로 세우기에도 거침 없었다. 하지만 임기 말인 1997년에 IMF 외환위기 당시 미숙한 대처로 사태가 확산된 것으로 인해, 퇴임 이후 그 동안 이룬 업적에 비해 박한 평가를 받아왔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의 장례는 1126일 오후 2시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차분한 분위기 속에 국가장으로 엄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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