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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개발의 역사
2015년 06월 06일 (토) 22:55:29 조윤찬 기자 ga_na95@hotmail.com

  예로부터 인간은 하늘을 동경하고 천체에 대한 깊은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이에 따라 발전하게 된 천문학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학문 중 하나이다. 선조들은 별을 보며 길을 찾았고 점성술을 통해 그 해의 농사를 점치기도 했다. 인류가 별에 대해 공부하고 관찰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됐지만 정작 우주개발의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우주개발은 16세기17세기에 이르러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케플러, 뉴턴과 같은 과학자들이 우주과학의 기초를 확립하고 망원경을 만들어 별을 관측하는 것을 시작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며 로켓·우주선 등 과학기기들이 도입되면서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우주개발이 20세기에 폭발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시기적인 이유는 바로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구 소련)의 첨예한 경쟁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제2차 세계 대전을 겪고 핵분열과 핵융합 기술개발에 매진하여 핵무기를 보유하기 시작했다. 이후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사정거리와 기술이 발전하며 우주로 쏘아 올릴 수 있는 발사체 기술이 확립된 것이다.

이후 우주비행사를 달에 착륙시켰다가 지구로 안전하게 귀환시키겠다는 아폴로 계획이 발표된 이래, 1969720일엔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달에 착륙하여 지구 밖 세상에 인류가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또 최근 ESA(European Space Agency)20141112일 탐사선 로제타에 실린 필레를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에 착륙시켰다. 이는 미국과 러시아 이외의 나라에서 처음으로 먼저 성공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에 우리나라도 지난 2003년부터 우리나라의 위성인 과학기술위성2(STSAT-2)를 우주에 올려놓기 위한 발사체 개발에 착수했다. 발사체의 이름인 나로(KSLV(Korea Space Launch Vehicle)-1)’는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이고 세 차례의 실패 끝에 결국 지난 2013131일 과학기술위성2호와 한국과학기술원이 교신에 성공했고 정상궤도에 안착했음을 확인했다.

 

달 착륙부터 혜성 착륙까지

 

우주개발의 역사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소간 첨예하게 우주개발 경쟁을 시작한 시기인 19581월 이후를 1, 19757월 미·소 양국이 유인우주선을 타고 지구궤도를 돌며 도킹에 성공한 때까지를 제2, 그 이후를 제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기 우주개발-·소 간의 전략무기 경쟁

 

우주개발의 시작은 195710월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Sputnik) 1호를 쏘아 올려 성공 발사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어 한 달 후 소련은 스푸트니크 2호에 라이카라는 개를 태워 보내며 성공을 하게 되자 유인 우주선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하고 그에 대한 연구에 매진했다. 이에 미국은 1958131일 익스플로러 1(Explorer-1)(공식 이름: satellite 1958 Alpha)을 발사했다. 두 나라가 우주개발에 있어 예민하고 민첩하게 반응한 이유는 로켓관련 기술이 미사일기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미사일은 전술타격 무기이기 때문에 명중률이 아주 중요하다. 로켓기술이 발전하며 양국의 미사일도 점점 명중률이 높아졌다. 이는 제1우주개발기를 미국과 소련 양국 전략무기의 공격력 경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이 군사적 목적으로 로켓을 연구했기 때문에 우주개발목적으로 연구하는 소련에 비해 실패가 잦았다. 미국 내에서 자국에 대한 비판여론이 강해지자 미국은 우주개발을 위한 기관으로 당시 항공과학국립기관이었던 국가항공자문위원회(NACA)대신 195810월 미국항공우주국((NASA: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을 발족하면서 미국의 모든 우주개발은 이 기관이 전담하게 되었다.

 

2기 우주개발-본격적인 우주탐사 시대의 개막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 독주 중에 유럽의 각국도 우주개발에 적극 참여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나 196511월 프랑스에서 자체 개발한 아망 3단 로켓으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다. 이렇게 인공위성 발사 기술은 10년간의 미국과 소련의 독점시대가 막을 내리게 됐다. 19702월엔 일본이, 같은 해 4월 중국이 인공위성 발사를 이어갔다.

인공위성 경쟁과 함께 우주선을 이용한 달 탐사 또한 활발해졌다. 달에 처음으로 탐사선을 보내고 달의 뒷면을 촬영한 것은 소련이 빨랐으나 미국이 이 기간에 아폴로 계획을 추진해 1969년 아폴로 11호에 탑승한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딛음으로 우주개발의 새 전기를 맞게 됐다. 이어 1972년 아폴로 11호부터 17호까지 총 6차례에 걸쳐 달에 유인 우주선을 보냈고(아폴로 13호는 고장으로 인해 중도 귀환) 385kg의 월석(月石)을 채집했다. 그리고 아폴로 17호는 2015년 현재 마지막으로 달에 착륙한 우주선이다.

이와 함께 우주정거장을 띄우기 시작했는데, 최초의 우주정거장은 1971년 소련이 발사한 살류트이다. 미국의 우주정거장 스카이랩(Sky-lab)1973년에 우주에 올려져 1980년까지 사용됐다.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우주정거장은 1986년 소련이 쏘아 올린 미르이다.

무엇보다 이 시기의 가장 큰 사건은 19725월 미국과 소련 간의 협정 조인에 따라 1975715일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을 마감하는 협조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소련이 발사한 소유스 19호가 궤도에 오른 뒤 미국의 아폴로 18호가 지상을 출발하여 궤도상에서 도킹하여 공동실험을 한 뒤에 다시 분리한 뒤 무사히 미국으로 귀환했다. 이것을 ASTP(Apollo-Soyuz Test Project)라고 부르며 이것을 끝으로 제2기의 우주개발의 막은 내렸다.

 

3기 우주개발-태양계 행성들에 대한 무인탐사

 

미국 내에서 베트남전쟁의 격화와 국방비 증가로 정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우주개발관련 비용도 삭감됐다. 이에 따라 바이킹프로젝트, 보이저프로젝트, 스페이스 셔틀 프로젝트 등을 제외한 많은 우주개발계획이 취소됐다. 이런 미국에 비해 일본이나 유럽 각 국의 우주개발 진행은 활발해졌다. 이때 소련도 1970년대부터 매년 100대 이상의 각종 위성을 발사했다.

이 시기엔 유인우주선으로 천체를 정복한다는 성과는 없었지만 화성, 목성, 토성 등 행성에 대한 무인탐사가 이뤄져 새로운 우주개발 연구 성과를 많이 얻었다. 1966년 소련의 비너스 3호가 금성으로 발사됐고 1975, 1976년 미국의 바이킹1·2호가 화성에 착륙하여 화성의 표면이 붉은 바위로 이뤄져 있다는 것과 생물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1977년엔 미국의 보이저 1·2호가 목성의 고리를 발견했고 1980년에는 보이저호를 토성에 발사하여 토성 사진을 구했다. 보이저호는 1986년 천왕성, 1989년에는 해왕성을 탐사해 행성사진을 보내오는 성과도 냈다. 또한 1980년대부터는 우주쓰레기가 너무 많아지는 것을 걱정한 세계 각국 우주기관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모여 일회성으로 우주에서 폐기되는 발사체를 대신해서 지구로 돌아올 수 있는 우주왕복선의 개발이 이뤄졌다.

1981412일 컬럼비아호가 처음으로 하늘을 난 이후 챌린저, 디스커버리, 애틀랜티스, 엔데버 등 대항해시대 유명 탐험선들에서 이름을 따온 5형제가 비행한 횟수는 총 135. 거리는 85000에 이른다. 하지만 우주왕복선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미래에는 우주왕복선의 활용으로 인해 우주개발의 실질적인 의미와 활용 방안이 달라질 것이다. 우주왕복선의 우주활동시대가 도래한다면 우주개발은 탐사의 목적보단 실용화에 더 큰 비중을 둘 것이라는 전망이다.

즉 미래의 우주개발은 우주군사기지·우주급유소 등과 같이 우주를 유영하는 기지와 함께 다른 행성을 식민지로 만드는 등의 활동이 활발해질 것이다. 현재 미국은 달에 여러 우주탐사 관련 기지를 세울 계획을 하고 있다. 더 나아가 화성·금성까지도 생활권으로 만든다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우주개발의 현황

 

우리나라도 변해가는 우주개발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인도우주연구기구(ISRO)와 함께 지난 324일에 서초구 반포 팔래스 호텔에서 -인도 우주협력 공동 워크숍을 개최했다. 인도는 현재 우주개발 능력 세계 5위권인 우주강국이다. 1980년대엔 이미 자국 발사체 개발에 성공했다. 최근에는 달 탐사위성과 화성 탐사위성을 쏘아 차례로 성공하는 등 우주강국임을 보였다. 우리나라는 2013년 우주개발중장기계획을 수립한 이후 인도를 우리나라의 성공적인 롤 모델로 꼽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발사체 기술 보유는 아직 많이 부진한 실정이다. 지난 2013130일 우리나라는 러시아의 기술 지원을 받은 우리의 발사체인 나로(KSLV(Korea Space Launch Vehicle)-1)’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을 성공리에 우주로 쏘아 올렸다. 우리나라가 미국이 아닌 러시아에 기술을 빌린 것은 미국이 우리나라의 인공위성 발사를 견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인공위성 발사가 북한의 핵개발과 인공위성개발, 장거리 미사일 기술 상향을 위한 빌미를 준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나라의 주변국들에서 우리나라의 인공위성 개발에 대해 부정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인공위성의 발사체에 무엇을 장치해 발사하느냐에 따라 미사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저궤도 관측 위성 개발 기술은 이미 세계수준이다. 하지만 발사체의 미보유로 우리가 개발한 위성의 우주발사는 주로 러시아 등 타국에 의존하고 있는 실태이다. 이는 나로호 발사 실패, 아리랑 5호 발사의 지연에서 여실히 나타난 바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발사체 개발뿐만 아니라 타국의 발 빠른 우주개발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우리만의 독자적인 우주개발에 힘을 써야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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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규임종빈최남미, 각국의 우주개발 동향,항공우주산업기술동향10(1), 한국항공우주연구원, 2012 .7, pp.3-13.

정선종, 우주개발 현황과 우리의 미래, 위성통신과 우주산업, 통신위성우주산업연구회, 2004, pp.4-6.

김재수, 우주개발 자립을 위한 우주발사체 개발 정책제언, 과학기술정책189, 과학기술정책연구원, 2012. 12, pp.26-41.

용홍택, 기술 자립 통해 우주강국으로, 나라경제, 한국개발연구원, 200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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