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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칼럼
2014년 12월 06일 (토) 23:54:09 박재민 교수 bostonpark@gmail.com

말이 높아서……

 

  “말이 높다.”

  천고마비의 계절 끝자락에서 말이 살찌고 하늘이 높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말[言]의 인플레이션’ 현상을 말하려는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아침 커피숍에서 들은 아르바이트생의 친절한 한 마디 말 때문이었다. 커피를 건네며 그 학생이 나에게 “뜨거우세요~.”라 말한 것이 내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아마 그 학생은 나에게 ‘커피가 뜨거우니 조심하세요.’란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친절한 학생이 내게 한 말은 ‘커피님이 뜨거우시니 조심하세요.’가 되어 버렸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치과에 갔을 때도 비슷한 말을 들었었다. 치위생사나 프런트에 앉아 있던 간호사가 내게 한 말이 모두 위와 같은 종류였다. 치위생사는 “오늘 발치 하나 하실게요.”라고 했고, 치료를 끝내고 계산을 하려니 프런트의 간호사는 “오늘 진료비는 10000원 되세요.”라고 했다. 내게 공손히 말하고 싶었던 듯한데 그들이 높인 건 공교롭게도 ‘발치를 하는 의사 선생님’과 ‘치료비님’이었다.

  이런 경험을 하거나 이에 대해 불편한 느낌을 지닌 이는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백화점에서, 가전제품 서비스 센터 등에서 우리는 위와 같은 말을 부지기수로 듣고 있지 않나 한다. 내 전공이 국어인지라 유달리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러한 말을 들을 때마다 불편함과 민망함을 동시에 느낀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에 대해 학과의 학생과 이야기하던 중, 뜻밖의 말을 들었다. 이러한 말이 잘못된 것인 줄 알지만, 자신도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더라는 것이다. 얘기인즉, 손님들에게 ‘가격이 1000원이에요~.’라고 하거나 ‘이 물건은 품절입니다.’라고 하면 말투가 공손치 못하다며 매장 주인에게 직원교육을 따지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잘못된 말인 줄 알면서도 “가격이 1000원 되세요, 물건이 품절이세요.” 등과 같이 쓰게 된다는 것이다.

  아! 그렇다면 나는 그 동안 큰 오해를 하면서 살았던 것이 된다. 이러한 말의 인플레이션은 점원들의 무지가 만들어낸 희극이 아니라, 일부 고객의 몰상식과 트집이 강요한 비극임을 알게 되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이러한 현상이 왜 대부분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젊은 여성들의 입을 통해 확산되고 있는지도 알 듯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소비자의 높은 언성이 가장 잘 통하는 처지의 직종이고, 그들은 그 언성에 가장 예민하게 흔들리는 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침 커피숍에서 던져진 화두로 말의 인플레이션, 나아가 이런 인플레이션을 낳은 이면 상황에 대한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간 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민망한 느낌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말의 인플레이션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촉발된 측면도 있음을 안 이상 이에 대한 나의 시각도 정립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더구나 예비 사회인인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입장에서랴.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아직은 그들에게 어떤 말을 해 주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지나친 예는 예가 아니니 부당한 일을 당하더라도 바른말을 지키라.”라고 말해야 할까, “물이 깨끗하면 손을 씻으면 되고, 물이 더러우면 발을 씻으면 되는 것이니 물 흐르듯 처신하라.”라고 말해야 할까. 말이 높아서 내가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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