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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는 우리 대학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내일
2014년 09월 06일 (토) 13:58:21 윤한규, 이상화 hdyune109@naver.com, sanghwa0428@naver.com

 

   

 

1. 관동의 주춧돌(1954~1969)

 1953727, 관동대학 설립 추진위원회가 대학 설립 캠페인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1954년 531, 강원 도민들과 영동지역 주민들, 그리고 지역사회 인사들의 재정적 도움을 기반으로 재단법인 관동대학관이 설립인가를 받고 초대 이사장으로 이종명 씨가 취임하게 된다1955년부터 2년에 걸쳐 관동대학 교사(校舍)가 강릉시 내곡동 산 72번지에 터를 잡아 나갔다. 6만여 평의 송림 부지에 목조 건물 2개 동이 건축되었으며, 마침내 1955426일 관동대학이 개교했다. 1957년 2층 규모의 강의동과 도서관이 준공되면서 교사로서의 형체를 드러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재정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TEAM 선교부(한국복음주의 동맹선교회)로 재단이 인수되어 그때부터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경영되었다. 학장서리로 갈필드(Mr. William Garfield) 선교사가 취임하면서 관동대학은 4년제 대학의 체제를 갖추게 된다. 이어서 19643, 재단법인 관동대학관이 학교법인 관동대학으로 조직 변경되었다. 그리고 19656월에 관대신문 창간호가 간행됐다.

 

 

 

 

    2. 종합대학으로의 성장(1970~1988)

1969년 영어영문학과가 증설인가 되었고 이듬해 1970년에는 교직과 과정을 설치인가 받았다. 상학과(경영학과 전신), 성문학과(기독교학과 전신), 농촌개발학과(71년 폐과)도 인가 받는다. 특히 1970년 제5대 이사장인 유상근 박사가 취임한 뒤 학교법인 명지학원이 관동대학을 인수했고, 12월 신학과가 폐지되었으며 경영학과·국어교육학과·농학과·영어영문학과의 신입생 모집승인이 있었다. 1971년에는 제127 학군단이 강원대학으로부터 분단되어 관동대학 ROTC가 창단되었다. 197212, 관동대학은 명지학원과 법인합병이 인가되었고 이후 국사교육과와 가정교육과가 증설이 있었다. 1974년부터 우리 대학의 축제, 쌍마제가 시작되었고, 1978년 전자공학과, 토목공학과, 건축공학과가 증설 인가되고, 야간부로 경영학과, 행정학과, 국어교육과 또한 신설 인가되고, 일어교육과를 일어일문학과로, 국사교육과를 역사교육과로 개편하게 되었다. 이후 법학과, 행정학과, 무역학과가 신설됐다. 198810, 성악과가 신설되었으며 정보처리학과와 전자공학과가 증원되어 신입생 입학정원이 1600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후 관동대학은 교육부로부터 종합대학 승격을 인가받아, 6개 단과대학 25개 학과로 개편하게 되었다. 

 

   

 

 

3. 양적 확대와 그 그림자(1990~2000)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주로 건물공사와 시설개발을 중점적으로 진행하였다. 1991년 지금의 대건관인 예술관 준공을 시작으로 1993년 양양캠퍼스가 기공되었다. 그리고 기공 5년 후인 199827일 양양캠퍼스 도서관, 학생회관, 전자통신기술연구소, 정문 및 수위실이, 1110일 양양캠퍼스 건설환경관이 준공되었다. 19990630일 강릉 제 2생활관, 20000218일에는 양양 제 2기숙사, 9월 제3생활관이 준공되었다. 20026월 지금의 제5생활관 신축공사를 시작으로 약 17개월 후 유니버스텔이 완공되었다. 유니버스텔은 호텔학부 학생 및 종사자의 교육실습과 게스트 하우스의 목적으로 신축 되었다. 2002826일 제2학생회관이, 200881일 제6생활관이 준공되면서 현재의 기숙사모습이 되었다.

그러나 대학 발전에 대한 장기적 안목과 체계적인 계획 없이 추진한 대학의 외형적 성장은 풀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야기하였다. 특히 양양 제2캠퍼스는 접근성과 학생 유치 등의 문제를 고려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건설함으로써 대학에 많은 교육적·재정적 부담을 안겨주고 말았다. 1995년 양양캠퍼스 개교 당시 정원이 3800여명에 이르는 등 한때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듯했지만, 결국 지역적 한계에 부딪쳐 2008년 9월 폐교 후 지금까지도 별다른 활용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4. 개교 50주년과 그 이면(2001~2014)

2004년 우리 대학은 개50주년 기념을 맞이하여 50주년 기념관(지금의 마리아관)을 건립하였다. 50주년 기념관에는 총장실과 더불어 교목실·교무처·입학처·대외협력처 등 대학본부가 들어섰으며, 대학원·교수 연구실·멀티미디어 강의실 등이 마련됨으로써 교육 인프라가 확충되었다.

201176일 남아공 더반 IOC총회서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었고, 우리 대학은 동계 올림픽 경기장 유치에 나서 2012년 10월 22일 아이스하키경기장 유치가 공식 확정되었다.

외형적 성장의 이면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대학의 난제들이 발목을 잡았다. 명지재단의 경영 부실화로 인해, 재단 전입금이 전무한 상태에서 대학 운영의 어려움은 개선되지 못했다. 특히 의과대학은 1995년 의예과가 설치된 이래, 20여 년 동안 부속 병원 없이, 협력병원의 방식으로 외부에서 교육을 받는 등 파행적으로 운영되어 왔고, 이는 대학 경영의 존폐를 가르는 커다란 문제로 부상했다.

 
 

   
 

 

 

5. 제2의 개교, 더 밝은 미래(2014~)

2013년, 이종서 제7대 총장이 취임한 이래, 우리 대학은 기초교육 활성화와 의과대학 부속병원 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이종서 총장은 우선, 사회 진출 역량 확보를 위한 핵심기초역량 배양과 학제적 융합 교육을 위해 기초교육에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다. 이를 위해 2013년 기초교육원이 출범하였으며, 2014년 조직 체계 확립을 위하여 단과대학 체제로 개편하였다.

또한 의과대학 문제는 명지학원이 재정난으로 운영권을 포기한 우리 대학을 인천교구(교구장 최기산 보니파시오 주교) 인천 가톨릭재단(이사장 대리 이학노 몬시뇰)에서 인수하는 방식으로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하게 된다. 이를 위한 법률적·행정적 절차를 마무리하고 지난 7월 1일 교육부로부터 승인을 얻게 되었고 이에 따라 인천시 서구에 위치한 국제성모병원이 우리 대학의 의과대학 부속병원이 됨으로써 부속병원 문제를 완벽하게 타개하게 되었다. 지난 9월 1일 가톨릭관동대학교 개교식을 시작으로, 제2의 개교라는 우리 대학의 새로운 역사의 서막이 올랐다.

지난 60여년 역사의 명암을 뒤로 하고, 우리 대학은 새로운 마스코트인 거북이처럼 뚝심있게 밝은 미래를 위해 걸어갈 것이다. 새로운 재단은 우리 대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재정적 지원은 물론, 선제적 정원감축 및 특성화를 통해 보다 내실 있는 대학으로 키워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우리 대학을 4년 이내에 70위권의 대학, 7년 이내에 50위권 대학으로, 특히 의과대학은 4년 이내에 10위 이내의 대학으로 발전시킨다는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이제 과거의 패배적 사고에서 벗어나 진정한 명문사학으로 도약해야 할 때다. "세상과 공감하는 대학, 세상의 빛이 될 대학", 이제 그 역할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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