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9. 3. 13 수 20:51
학위수여식,
   
> 뉴스 > 기획
     
90년대 이후 한국 재난사
2014년 05월 11일 (일) 20:57:32 배석원, 윤한규 sw.note@hotmail.com, hdyune109@naver.com

1993년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

이번에 발생한 진도 세월호 침몰과 쌍둥이 사고로 불리는 사건이 바로 1993년에 발생한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다. 지난 19931010일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에서 발생한 서해 훼리호 사건은 292명의 사망자를 냈다. 피해자들의 대부분은 섬 지역에서 살던 주민들이었다. 당시의 최대 초속14미터의 돌풍이 예보됐지만, 훼리호는 무리하게 배를 띄었다. 승객 정원도 207명보다 148명이나 더 태웠다. 하지만 구명조끼 등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아 패해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고 현장에는 인근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 등이 긴급 구조 활동을 벌여 생존자 구출작업을 벌였으며, 뒤따라 경찰과 군부대의 헬기, 해군 함정 등이 투입 돼 승객 구조와 사체 인양 작업을 폈다. 당시의 사고를 낸 군산 서해훼리측은 물론, 승선자 명단 관리책임을 맡고 있는 해운항만청(이하 항만청)도 사고 이후 정확한 승선인원을 파악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사고 원인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밝혀진 것은 악천후 속의 무리한 출항이다. 항만청은 안개가 짙게 끼거나 폭풍우 등 기상악화 시 출항통제를 하도록 돼있지만, 훼리호는 이를 무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여객선 선장은 출항하기 전에 점검 보고서를 정확히 작성해 제출하도록 돼 있지만, 서해 훼리호 선장은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19931010일자에 작성된 연합뉴스에 따르면 정확한 승선인원 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허술한 행정당국의 연안여객선의 사전 및 사후관리 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제2, 3의 대형 해난사고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19941021일 성수대교가 무너져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당한 사건이다. 성수대교는 오전 738분경에 제5·6번 교각 사이 상부 트러스가 약 50m 붕괴했고, 사고부분을 달리던 승합차 1대와 승용차 4대가 물속으로 빠졌다. 다리 위를 지나가던 16번 시내버스는 차체가 뒤집혀 추락해 등굣길 학생들을 비롯한 승객들이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32(16, 16)이 숨지고, 17명이 부상을 입어 총 4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으로는 소홀한 안전점검 조치와 교각 내부의 결함인 것으로 밝혀졌다. 다리 밑 철조구조물 부분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으며, 연결 부분도 심하게 녹슬어 있었다. 다리 위에 가해지는 압력을 분산시키는 이음새에도 결함이 있었다. 초기 시공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볼트를 무리하게 집어넣다가 구멍의 모양이 변형되면서 볼트의 강도가 약해진 것이다.

붕괴 전의 성수대교 설계 하중은 총중량 32.4t이었지만, 이를 초과하는 과적 차량들이 자주 통과해 압력을 받아 붕괴단계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특히 사고의 직전 연도인 1993, 서울 동부간선도로가 개통되면서 교통량은 더욱 폭증했으나, 서울시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사고 직후 당일 오후 7시에 이원종 서울특별시장이 경질됐다. 또한 개원 중이던 국회가 일체 중지되었고, 24일 김영삼 대통령이 대국민 특별담화문을 전국 TV를 통해 발표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붕괴 이후 국내 토목학계는 성수대교에서 무너지지 않은 부분은 그대로 수리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으나, 국가는 시민들의 불안감을 감안해 새로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성수대교는 1995426일부터 재건이 시작돼 199773일에 완성됐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995629일 삼풍백화점이 붕괴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삼풍백화점은 1989년 삼풍건설산업에 의해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에 세워졌으며, 매출액 기준 대한민국 업계 1위를 달리던 초호화 백화점이었다.

무리한 설계변경, 하중 계산 무시, 부실공사가 주된 원인이었다. 본래 아파트 상가 및 행정동으로 사용할 예정이었지만 백화점으로 변경하면서 4층 건물에서 억지로 5층으로 늘리고 기둥 둘레를 줄이는 등 부실공사가 있었다. 또한 5층을 식당으로 사용하면서 온돌까지 놓아 무게가 가중되었고, 29톤가량의 에어컨 3대가 너무 시끄러워 주위에서 민원이 들어오자 에어컨 위치를 반대편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기중기를 사용할 경우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직접 끌어서 옮겼고 옥상에 상당한 무리를 주게 되었다.

삼풍백화점은 붕괴 며칠 전부터 천장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시멘트 가루가 떨어지며 건물이 기우는 등 붕괴와 관련된 여러 징조가 나타났지만, 경영진 측은 영업을 계속 강행했다. 뿐만 아니라 붕괴 직전 간부들만 백화점을 빠져나와 직원들과 고객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로 백화점 내부에 있었고 결국 1995629일 오후 555분경 삼풍백화점 A동 전체가 붕괴되었다.

이 사고로 502명이 사망했고, 937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6명이 실종되어 총 1,445명의 사상자가 생겨 한국전쟁 다음으로 한국 역사상 최대 인명 피해를 남긴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러한 대참사가 벌어진 곳이라면 삼풍백화점 터에 추모공원을 만들고 사고를 기억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하지만 정작 그 터에는 주상복합인 아크로비스타가 들어왔고 신원확인 못한 시신들의 납골함을 담은 위령탑은 엉뚱한 장소인 양재동 시민의 숲에 세워졌다.

 

 

 

1996년 화성 씨랜드 화재 사고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는 1999630일 경기도 화성군(현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에 있는 청소년 수련시설인 놀이동산 씨랜드 청소년수련원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취침 중이던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및 강사 4명 총 23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당한 사건이다. 화재 발생 후 1시간이 지난 새벽 141, 신고를 접수한 소방서에서는 화재사고 현장에 소방차 20여 대와 소방관 70여 명, 경찰 250여 명 등을 출동시켜 화재진화와 인명구조 작업을 벌였지만 애초에 신고가 너무 늦었고, 소방서가 현장으로부터 70떨어진데다 화재가 발생하면서 생긴 유독가스와 건물 붕괴위험 등으로 진화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화재는 수련원 3C301호에서 일어나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옮겨 붙은 것으로 보였다. 화재원인으로는 방 안에 펴둔 모기향이 이불에 옮아 붙었거나, 전기 누전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그를 중점으로 정밀검식을 하였지만 원인은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이 수련원은 콘크리트 1층 건물 위에 52개의 컨테이너를 얹어 23층 객실을 만든 임시건물로, 청소년수련원으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고 여러 위험요소를 안고 있는 구조물이었다. 생활관에는 화재경보기가 있었으나 불량품으로 판명되었고, 내부에 있던 소화기는 15개 중 9개는 비어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현 한국어린이안전재단 고석 대표는 이 사고로 두 쌍둥이 딸을 잃은 후 생업을 포기하고 재단을 설립하여 어린이안전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도 이름이 알렸던 전 국가대표 하키 선수 김순덕 씨는 이 사건으로 아들을 잃고, 모든 훈장과 메달을 반납하고 한국에선 살고 싶지 않다.”고 밝힌 뒤 뉴질랜드로 이민을 결정했다.

이러한 불행한 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011년 참사 현장 옆에 불법 시설물로 꾸며진 야영장이 조성돼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 발견됐다. 이 불법 시설물을 설치한 사람은 이 참사 당시 소유주이자 시설운영자와 동일인이 것으로 드러나 우리를 경악하게 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2003218일 오전 953분 경 대구광역시 중구 남일동 중앙로역 구내에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은 50대 중반의 삶은 비관하던 지적장애인 남성이 휘발유를 담은 페트병 2개에 불을 붙인 뒤 객실에 투척하면서 화재가 발생했다. 지하철에서 불이 나자 중앙로역 일대는 유독가스로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으며, 환풍구와 출입구 등에서 나온 시커먼 연기는 시내 전체를 뒤덮어 앞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는 정도였다. 사고소식을 접한 뒤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려는 사람들과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로 아수라장이었다.

사고지역의 불은 순식간에 전동차와 6개 객차에 번졌고, 당시 반대편에서 중앙로역에 도착한 상행선 전동차 6량에도 옮겨 붙어 피해가 컸다. 이 화재로 총 12량의 지하철 객차를 뼈대만 남긴 채 모두 태워버렸다. 이 사고로 192명의 사망자와 21명의 실종자 그리고 151명의 부상자라는,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최대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게다가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지하철에 화재가 났을 뿐만 아니라, 시간 때 역시 오전으로 비교적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인명피해 규모가 더 컸다. 사고 열차인 1079열차의 승객 대부분은 정차 중인 열차의 문이 열려 있었고, 기관사가 승객들에게 대피를 지시하여 대피한 반면, 반대방향으로 운행 중이던 1080열차는 화재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역에 진입, 정차함에 이어 기관사가 마스터키를 뽑고 현장을 빠져나가 문이 잠긴 열차 안에서 승객들이 빠져나오지 못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에 김대중(金大中) 정부는 다음날 19일 오후 청와대에서 대구 지하철 참사지역에 대한 보고를 받고, 참사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였으나, 사고 직후 대구광역시와 지하철 종사자들이 사고를 축소·은폐하고, 현장을 훼손하는 등 부실한 대응으로 피해가 확대된 것으로 밝혀져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이로 인해 방화범과 지하철 관련자 8명이 구속 기소되었으며, 방화범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 사망했다.

서해 훼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상풍백화점 붕괴, 씨랜드 참사, 대구지하철 화재, 올해 2월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 그리고 이번 세월호 침몰 사건까지, 이런 대형사고의 기본적인 공통점은 무사안일이 빚은 인재였다는 점이다. 서해 훼리호 사건 이후 19년이 지난 지금도 안전불감증, 관리감독 소홀, 민관유착, 초동대처능력 문제, 위기관리시스템의 부재 등이 고질병적으로 대형 인재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자료>

씨랜드 화재 참사옆 또 불법 시설, 매일경제, 2011.08.17.

대구지하철 참사지하철과실은폐 추적, 문화일보, 2003.02.21.

불길정전유독성 연기퍼지며 아비규환, 한국일보, 2003.02.18.

맞은편 전동차 닫고 20여분간 멈춰 키워」 『한국일보, 2003.02.18

불길 삽시간에 번져 희생자 늘어, 매일경제, 1999.07.01

한명이라도 더 구했어야 했는데, 매일경제, 1999.07.01

삼풍백화점 건물자체 결함 가능성, 연합뉴스, 1995.06.29.

三豊백화점 붕괴, 수백명 사상(종합), 연합뉴스, 1995.06.29.

三豊백화점 붕괴원인 뭔가, 연합뉴스, 1995.06.30.

`'소리와함께 떨어진 출근길 날벼락, 연합뉴스, 1994.10.21.

검찰, 성수대교에 대한 현장검증 실시결과 이미 내정된 붕괴, MBC뉴스 1994.10.22

성수대교, 설계통과하중 18t 이상 차량 통과, 연합뉴스, 1994.10.21.

성수대교 붕괴원인, 상판 이음새의 연결핀 파손으로 추정, MBC뉴스 1994.10.22

성수대교 붕괴사고 사망자 32명 명단, MBC뉴스 1994.10.21.

김영삼대통령, 성수대교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 사과문 발표, MBC뉴스 1994.10.23.

생존자들 사고 순간 되새겨, 연합뉴스, 1993.10.10.

서해훼리호 사고 행정당국 관리에 허점 드러내, 연합뉴스, 1993. 10. 10.

2백여명 승선 서해훼리호 침몰,74명 구조 사체 50구 인양, 연합뉴스, 1993.10.10

 

 

 

배석원, 윤한규의 다른기사 보기  
ⓒ 가톨릭관대신문(http://news.cku.ac.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신문사소개 기사제보 광고문의 제휴안내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210-701 강릉시 범일로 579번길 24(내곡동) | 전화 : 033)649-7880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창희
Copyright 2008 가톨릭관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ckunp@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