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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하의 culture칼럼❷
말의 세계
2013년 10월 06일 (일) 23:24:46 박용하<시인> eastpoem@hanmail.net

시골에 와서 산 지 십 년이 넘는다. 시골서 사는 거 만만치 않다. 나같이 남의 간섭 받는 걸 극도로 꺼리는 인간에겐 더더욱 그렇다. 거기엔 이웃 사람들의 쓸데없는 참견과 뒷담화로 인한 피로도 심심치 않다. 오는 말이 곱지 않으니 가는 말이 곱지 않다. 늘 말이 문제다. 인간이 말하는 동물이니 말이 문제라는 것은 인간이 문제라는 말.

지난번 살던 마을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전셋집이었는데 천장으로 물이 샜다. 타지에 있는 집주인에게 연락했더니 내일 갑니다그러곤 내일이 다 가도 연락도 없고 오지도 않았다. 다시 전화하니 이번 주말에 갑니다그러곤, 주말이 다가도록 연락도 없고 역시 오지 않았다. 또다시 전화하니 그 마을에 사는 제 동생이 들를 겁니다그러기에 기다렸더니 역시 오지 않았다. 내 집 같으면 집을 부수어서라도 어찌 해보겠지만 전셋집이니 그러지도 못하고, 여하튼 집에 문제가 있어 전화 하면 이 사람 입에 붙어 있는 말은 내일 갑니다였고 내일이 다가도록 아무 연락이 없고 오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성질이 뻗치다가도 이렇게 빈말을 자동응답기처럼 일삼는 사람의 뇌의 상태가 의심스럽고, 그렇게 골 빈 듯이 말하는 인간이 심지어 측은해보이기까지 했다. 어디 그 사람뿐이겠는가. 정치가든 일개 시민이든 유명인이든 일상인이든 애든 어른이든 말 바꾸지 않고 말 돌리지 않고 이 핑계 저 핑계 대지 않고 약속을 못 지키게 돼 미안합니다한 마디만 할 수 있어도 그 사람은 결코 작은 사람이 아니라는 게 지금껏 경험으로 알고 있는 내 평소 생각이다. 말이란 게 묘해서 자신이 한 말을 아무리 말 바꾸기를 잘하고 잘 둘러대도 덧나고 얼룩이 지기 십상이다.

알다시피 한자 신뢰’(信賴)’()사람 인’()말씀 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사람의 말이 곧 그 사람이니,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우선 그 사람이 한 말을 그 사람이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갈린다. 일개 개인과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인의 말인 경우엔 더 그렇다.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와 인신공격성 발언도 그렇거니와 선심성 헛된 공약을 남발하는 것에 이미 우리는 질리다 못해 무감각해진 사회에 살고 있다. 공약(公約)은 지키지 못하면 공약(空約)이 되고, 공인(公人)은 공인(空人)이 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공인을 뽑은 사람들에게 되돌아온다.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고, 그걸 상용적으로 용납하는 사회는 부패가 만연하도록 허용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거짓말하는 인간보다 거짓말을 일삼는 인간이 한 사회의 주도권을 쥐고 버젓이 활보하도록 묵인하고 용인하는 사회가 더 나쁜 사회인 것처럼.

MB 정부의 최대 치적(패악질)은 여러 가지지만 그 중 하나가 우리가 쓰는 말을 파탄낸 것이라고 해야겠다. 이름하여 영혼 없는 막말 정부. ‘표 얻기 위해 무슨 말을 못하나’, ‘주어가 없다’,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 먹게 됐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부’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된다’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 ‘녹색성장, 4대강 살리기를 비롯해서 심지어 국민작가 입에서 나온 촛불장난까지 일일이 나열하기도 쉽지 않다. 문제는 이번 정부에서도 이 말의 장난과 패악질이 계속 되리라는 것이다. 이젠 일본 우익들이나 하던 망언이 이 나라에서도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 나라에서 정치권력이든 경제권력이든 언론권력이든 갑이든, 힘 가진 자들이 일삼는 후안무치하고 폭력적인 언사는 공분의 수준을 넘어 흉기화하고 있다. 도처에 입에 발린 소리 아니면 마치 혀칼들의 광기전야를 연상시킨다.

내가 말을 글로 쓰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어서 더 그렇겠지만, 내가 하는 말과 글뿐 아니라 남들이 하는 말과 글에 무심할 수 없고 때론 유별나다시피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하지 말았어야 할 나의 말과 글 때문에 나는 종종 나 자신을 탓해야 했고 낯 뜨거워해야 했다. 역으로 남이 한 말로 인해 내가 받은 상처는 때론 깊고도 깊었다. ‘남이 한 말에 일일이 신경 쓰고 살면 이런 세상에선 피곤해 못 산다아무리 일러줘도, 내가 말에 무감하게 살 수 있는 저 길바닥의 돌멩이거나 저 하늘의 새털구름이 아닌 한 별 소용이 없다.

흔히 하는 말로 다르고 다르다. ‘이 말이 다르고 저 말이 다르다. ‘꿈에도 통일꿈에나 통일이 다르고, ‘비자연반자연이 다르고, ‘사람 사는 세상세상 사는 사람이 다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첫 문장을 나는 병적인 인간이다로 번역하는 것과 나는 병든 인간이다로 번역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커 보인다. 이 사람의 말이 다르고 저 사람의 말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타인이야말로 지옥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타인만이 구원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잖은가. 말이 다르니 사람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니 세계가 다르다. 그리고 그 말이 진실을 위해 있는 말인지 거짓을 위해 복무하고 있는 말인지 우리는 늘 의심해야 하고 따지고 감시해야 한다. 말의 윤리에는 듣기 좋은 말만 하고 들으라는 게 아니니, 때론 비판할 권리와 비판받을 권리도 함께 이 윤리에 들어있다. 나만 옳고, 내가 한 말만 옳다는 식의 사고와 믿음은 폭력에 가깝다. 내가 하고 쓴 말과 글이 잘못되고 틀렸을 수도 있다는 성찰이 빠진다면 우리는 우리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언제든 가해자의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별 거 아닌 따스한 말 한 마디가 그 말을 하는 사람을 빛 속에 있게 하고 그 말을 듣는 사람을 역시 빛이 흐르는 공기 속에 있게 한다. 당신이 하는 말 한 마디가 이웃의 낯빛을 환하게 만들고 마을의 온도를 다르게 한다. 말 한 마디 때문에 내가 얼마나 상처받고 너는 또 얼마나 상처받았던가. 게다가 말은 칼과 달리 직접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도 원거리에서 한 인간을, 한 마을을, 한 사회를 피투성이로 만들고 시궁창으로 만들 수도 있다.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지 않는가. 말은 인간의 축복이자 재앙이다.

말의 위기다. 말의 위기가 인간의 위기고 인간의 위기가 세계의 위기다. 내가 하는 말의 위기가 나의 위기고 나의 위기가 인간의 위기다. 말의 윤리가 인간의 윤리고 우리 사는 세상의 윤리다. 우리들의 말이 썩는 순간 우리들도 썩어가기 시작한다. 자신이 한 말에 책임지는 사람이 그립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했다고 깨끗하게 승복하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그립다. 그리워도 너무 그립다. 우리는 오늘도 거짓말을 먹고 산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괴벨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

 

약력: 1989<강원일보> 신춘문예와 문예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한 남자4, 산문집 오빈리 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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