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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역이 있었다
2013년 09월 08일 (일) 23:27:32 박용하 <시인> eastpoem@hanmail.net

   
아직도 지나가는 기차를 보면 설렌다. 당장 떠날까? 지금 살고 있는 집 근처로 하루에도 십여 차례 무궁화호 기차가 중앙선을 오가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물끄러미 쳐다보는 그 기차들 중에는 강릉까지 가는 기차가 있어 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선지 나는 그 어린 날의 나처럼, 달려가는 기차를 향해 열심히 손 흔들고 싶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어떤 날엔 실제 흔들기도 한다.

내 고향은 강릉 사천진이다. 거기서 나고 거기서 중2때까지 자랐다. 고향집 마당에 서면 좌동해 우태백산맥이 거대한 스크린으로 펼쳐졌고 멀리 경포 해변이 아스라이 눈에 밟혔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던 1960년대 후반만 해도 경포해수욕장 옆 경포역까지 기차가 들어왔다. 우리집에서 해변을 따라 십 여리 걸어가 기차를 탔던 기억과 날이라도 흐릴라 치면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기적소리가 그 바닷가 마을까지 심심치 않게 밀려왔다. 여러 기억들 가운데 이런 기억도 있다. 하루는 철암에 살고 있던 삼촌을 만나러 조부모와 함께 집을 나섰는데 집에서 키우던 개가 그날따라 아무리 달래고 소리쳐도 막무가내로 경포역까지 따라 왔다. ‘우리 개 어떡하냐’며 근심스레 지켜보던 차창 안의 우리를 차창 밖에서 하염없이 들여다보던 그 개는 나중에 돌아와 보니 “큰댁 개가 왜 여기 있지!”라며 의아해 하던 작은댁 아저씨 손에 이끌려 무사히 집에 와 있었다. 작은댁 할머니가 경포해수욕장에서 근처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이렇듯 좋든 싫든 내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그 숱한 비자발적인 기억들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언제 솟아오를지 모르는, 죽지 않고 잠들어 있을 뿐인, 언제 깨어나 발아할지 모르는 촘촘한 기억의 씨앗들인 셈이다. 기억은 인간이 지닌 망각의 힘만큼이나 그 힘이 세다.

내겐 기억의 기차가 있다. 부산에서 출발한 기차가 강릉으로, 원산으로, 청진으로, 블라디보스토크로, 모스크바로, 유럽의 끝으로, 지도를 유심히 보던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달리는 기차를 늘 그려왔다. 이것은 나의 오랜 원(願)이고 나와 나의 후손이 누려야 할 미래의 기억이기도 하다. 나는 언젠가 도래할 현실을, 곧 코앞에 들이닥쳤으면 싶은 현실을 말하고 있음에도 내가 하는 말이 극히 비현실적으로 들리고, 심지어 환상이나 망상, 초현실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니 이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저녁 외식 자리에서 고1 딸아이가 “아빠는 너무 심각해” 그런다. 내가 무슨 심오한 생각을 해서 그런 게 아니고,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으니,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지난날의 안 좋았던 기억과 상처에 시달리는 걸 모르고, 밥 먹는 자리에서는 얼굴 좀 풀라고 하는 말이었다. 응한답시고 불쑥 “그럼, 내가 태어난 곳에서 북쪽으로 2백킬로미터도 올라갈 수 없는 나라에 사는데 안 심각하냐” 했더니 옆에서 아내가 씩 웃으며 “딸 공부 어떻게 시킬지 그런 걸 좀 고민해요”라며 면박한다. 내겐 엄연한 현실인 말과 생각조차 타인에겐 관심 밖의 일이거나 아예 비현실적인 몽상쯤으로 여길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가족간에도 사정이 ‘나’ 다르고 ‘저’ 다르다.

나의 북쪽은 막혀 있다. 하루 하루가 자신들 생에서 야금 야금 원금 까먹듯 줄어드는 걸 누구보다 절박하게 겪을, 아직도 이산으로 살고 있는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실향민뿐만 아니라 나같이 벌써 50줄에 들어선 비이산 세대들에게도 이것은 트라우마다. 이산가족조차 정치적 이해에 따라 야박하게 순번을 기다려 가슴 졸이며 만나야 하는 희비극 자체가 이 땅의 비현실적인 지독한 현실이다. 이것은 우리가 민족의 문제이기 전에 인간의 이름으로 풀어야 할 숙제임에도, 오늘 벌어 오늘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대학 졸업하기도 전에 빚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에게, 무슨 변혁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골 싸매야 할 통일에 뭐가 아쉬워 남북한 최상위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통일 같은 것에 관심을 두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통일은 귀신 해바라기 씨 뱉는 소리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들의 북쪽이 가로 막혀선 평화니 자유니 하는 말도 한국인에겐 반쪼가리 평화와 자유에 불과할 것이고, 그 말을 다르게 하면 4대 강국을 적극 활용하며 살지 못하고, 늘 그들의 파워 게임에 끌려다니며 틈바구니에 낑겨 살아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남북한 최고 권력자가 만나 “남이 우리를 통일시켜 줄 게 아니니 우리 이제 통일합시다” 할리 만무하고, 남북한 사람들이 집단 광기나 최면에 걸려 비무장지대로 몰려가 철책을 뜯어내는 일도 꿈에나 일일 게다. 통일 후에 벌어질 숱한 난제들은 통일 이후의 문제고 그것 역시 쓰든 달든 통일을 이룬 자들이 맛 볼 열매다. 과연 우리는 통일할 저력과 여력을 갖고 있는 걸까. 나부터 나에게 묻는다면? 우리의 소원은 ‘꿈에나 통일’ 아닌가 이렇게 답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오매불망 끼니마냥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들을 잊지는 말자. 내일 세상이 어떻게 된다고 확언하거나 예언하는 자는 예언자이기보다 사기꾼이기 쉽다. 내일 아침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바람은 딴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김수영, 「절망」

 

영동고속도로가 없던 시절, 청량리역에서 출발한 기차가 밤새도록 달려 동 틀 무렵 도착한 종착역 앞에는 신천지가, 더구나 처음 바다를 겪는 사람에겐 그것도 한밤 동안 비 퍼붓고 한 줄기 회오리처럼 서광이라도 비치는 여름아침바다 같았으면 아마 창세기가 펼쳐지고 있다 했을 것이다. 그 당시 젊은이들에게 경포역은 하나의 해방구였을 게다. 하지만 기차는 거기가 끝이었다. 갈 수 있는 길을 막으면 그 길은 벽이 된다. 나는 경포역에서 고향집 앞을 지나 북진하는 기차가 다니는 날이 오는 소원을, 손에 쥔 대륙횡단 신 레일로드 티겟처럼 아직도 못 내려놓고 있다.

나의 북쪽은 지구에서 가장 두꺼운 철책, 말이 비무장지대지 살벌한 무장지대로 막혀 있다. 이것은 거대한 트라우마다. ‘통일’ 얘기 꺼내지 말고, ‘통 크게’ 기찻길부터 열었으면 좋겠다.

 

 

약력: 1989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와 『문예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한 남자』외 4권, 산문집 『오빈리 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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