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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한계선(NLL)’은 합법적 해상경계선인가?
명확한 협의가 이루어져야
2012년 10월 07일 (일) 22:03:05 김고은 수습기자 rhdmscokk@hanmail.net

   
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 NLL)이란 휴전협상의 의제 가운데 군사분계선(Military Demarcation Line, MDL) 협상에서 유엔군과 공산 측은 군사분계선의 기준을 대치선으로 한다는 원칙에 합의하였다. 그런데 이 당시 동서 해안의 해상경계선에 대하여 남북한 사이의 명시적인 합의가 없었다. 때문에 유엔군의 클라크 사령관은 한반도 해역에서 남북한 사이의 우발적인 무력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동해 및 서해에 해군과 공군 초계활동을 제한할 목적으로 북방한계선을 설정했다. 서해상에서의 북방한계선은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 등의 서해 5개 도서와 북한 지역과의 중간선을 기준으로 한강하구로부터 서북쪽으로 12개의 좌표를 연결하여 설정했다. 동해상에서의 북방한계선은 지상 군사분계선의 연장선을 기준으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북한 측에서는 북방한계선이 유엔군 측의 일방적 조치라며 그 효력을 부인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 때문에 전후에 해상에서 긴장이 계속 되었다. 북한 측은 1973년 12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에서 구 황해도와 경기도 도 경계선 이북 수역은 그들의 영해라고 주장하면서 서해의 5개 도서에 출입하는 선박에 대한 사전허가를 요구했다. 북한은 1977년 7월, 200해리의 경제수역을 설정한 데 이어 8월에는 동해에서의 영해 기선의 50마일을 서해에서는 경제수역으로 한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남과 북의 해상 불가침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 불가침구역은 해상 불가침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해 온 구역으로 한다”고 합의함으로써, 남북한의 논쟁은 일단락 지은 듯 했다. 그러나 1999년 6월 연평해전이 일어났고, 북한은 같은 해 9월 새로운 서해 해상군사분계선을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이어 2000년 3월 하순엔 기존 북방한계선 대신, 자신들이 설정한 수로로 서해 5도를 통행하라는 ‘서해 5개 섬 통항 질서’를 발표했다. 정부는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즉각 반박했고, 그 후로도 갈등은 계속되었다.

2006년 3월, 북한이 제3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 재설정 협의를 주장했고,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서해 평화협력지대 개발 합의로 절충안이 마련되었다. 제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해 북방한계선 재설정 문제를 논의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대화가 중단되면서 협의는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남한에서는 북방한계선이 지난 반세기 이상 남북한 사이의 해상경계선이었으므로 효력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북한에서는 휴전 후 북방한계선을 자주 침범하며 이를 부인해왔다. 특히 서해상에는 매년 6월 꽃게잡이 철을 맞아 남과 북 사이의 서해상 영해침범이라는 상호 엇갈린 주장, 군사적 경고와 행동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에 따른 남북한 사이 해상에서 무력충돌의 잠재적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것을 항시 생각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쌍방간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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